이경원 교수 '백두산 떧어나온'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 강산에 역사 반만년....’으로 시작되는 이 동요는 퍽이나 우리 귀에 익은 노랫말이다. 필자는 이 노래의 제목이 무엇인지 누가 지은 노랫말이며, 누가 곡을 붙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어린 시절을 생각하노라면 학교운동장에서건 동네골목에서건 고무줄넘기들을 할 때면 여자 아이들이 즐겨 부르던 이 노랫소리가 귓전에 아련히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노랫말에서처럼 우리의 삶의 터전을 <반도 삼천리>에 한정해 생각해 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거의 무의식적이리만치 우리의 머릿속에 입력이 되어있다. <삼천리 금강산>에 있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피는 곳>이 나의 고향이라는 것이 우리의 공통된 정서이다. 끝없이 펼쳐진 넓은 초원지대라든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끝없이 이어지는 구릉지대 또는 푸른 숲이 바다를 이룬 광활한 수해(樹海)등은 우리들의 고향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의 삶의 터전을 <반도 삼천리>에 국한해 생각하다 보면 바위, 계곡, 맑은 물이 어울려 아기자기한 풍광을 이루는 삼천리 금수강산만이 생각에 떠오르게 된다. 백두산과 삼천리 금수강산은 참으로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 우리사회에서는 우리 국가의 운명을 한반도의 생김새에 비유해 설명하는 유명 인사들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는 너무나 우리의 생각의 굴레를 한반도에 얽어매 놓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대학시절에 읽었던 함석헌 선생의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의 국운(國運)이 백두산에서 융성하다 한반도를 타고 내려오면서 우여곡절을 겪다가, 마침내 남해 바닥에 빠지듯 일제 35년의 암흑시대를 벗어나 한라산 높이 1950미터처럼 1950년이 다 되어 해방을 맞아 다시 우리의 국운이 빛을 보리라 란 취지의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당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앞바다로 우리의 국운이 빠져버리면 어찌할 것인가라고. 이처럼 한반도에 우리의 생각을 가두어 놓고 생각하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는 생각의 오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의 모양이 토끼같이 생겼다느니 또는 호랑이같이 생겼다느니 하는 논쟁도 부질없는 짓거리이다. 미약한 초식동물인 토끼보다 용맹스러운 호랑이를 우리의 상장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것조차 한반도에 연관 지어 생각함으로써 우리의 생각을 한반도에 가두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호랑이도 시베리아 호랑이를 구태여 <백두산 호랑이>라고 불러가면서까지 우리를 백두산과 호랑이에 연관 지으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하기는 하다 필자에게도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 가기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한 후 갖은 고생을 해가며 백두산 천지에 올랐던 지난 88년 8월8일 새벽의 감동스러운 경험이 있기도 하다.
이처럼 백두산 하면 우리민족 모든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백두산 호랑이는 한반도는 물론 만주 벌판과 시베리아벌판을 무대로 종횡무진 달리는 맹수이다. 백두산은 하필이면 남쪽으로만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를 이룬 것이 아니라 백두산 호랑이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 요동반도와 만주벌판은 물론 러시아의 연해주까지 뻗어 나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한반도 내에 가두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는 어쩌다 그렇게 됐을지언정 우리 이후의 세대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런 터에 몇 해 전 국제 체육행사에 참가하는 남·북한 단일팀을 상징하는 깃발을 만들었을 때, 그 깃발의 내용이 다름 아닌 한반도임을 보고 필자는 적지 않게 실망을 한 적이 있었다. 남북한이 하나이어야 한다는 상징으로 한반도를 내세운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한반도에 가두는 짓을 반복해서는 안 되겠다. 인위적으로 나뉘어져있는 남북한은 시간문제이지 언젠가는 하나가 되게 되어있다. 남북이 하나라는 의미를 부여하기위해 한반도 깃발을 내세운 취지는 좋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더 한반도에만 고착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생활의 무대를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말고 넓혀야겠다. 이것은 흔히들 말하기 쉬운 고구려 고토(古土)를 회복하자는 주장을 펴기 위함도 아니다. 필자도 중국의 그 광활한 만주 평원이나 러시아의 연해주를 여행하며 그 넓은 대지(大地) 위에서 말 달리던 고구려인들을 상상하며, 잃어버린 고토에 대한 안타까움과 왜 그렇게 되도록 우리 선조들이 무엇을 잘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바 아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고구려 고토는 물론 전 세계를 생활의 터전으로 생각하고 뛰도록 해야겠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우리의 태도는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에서 <백두산 뻗어내려 육대주 오대양>으로 바뀌어야겠다.
글/ 이경원 교수는 양주군 이담면(현, 동두천)출신으로 서울대를 거쳐 일리노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일리노이대, 대진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북부미래포럼과 재단법인 송암 대표로 다가올 북방시대와 지역에서 후학들을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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