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원의 '민주주의와 경제'
오늘날 많은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는 정치형태상의 문제이고, 경제는 이와는 별개의 사안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각각 정치학과 경제학의 연구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개념은 그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결되어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서양 근대 시기 정치혁명과 더불어 경제혁명을 주도한 세력은 부르즈와 세력이다. 프랑스의 경우, 제 3신분이고, 영국의 경우 신흥 젠트리 계급들이다. 미국 혁명을 주도했던 것도 새롭게 등장하는 신흥 자본가 계급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이전에 귀족 밑에서 일하던 계층들이 점차 독자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서 성장한 자본가 계급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상업 활동을 통해 점차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나온 것이 바로 근대 민주주의 이념이고 권리선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간주하고 있는 개인의 권리나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들의 상업 활동을 가능하게 하도록 하는 이데올로기였던 셈이다.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하려면 국가의 간섭도 되도록 없어야 하고,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이념 안에는 그 한계가 있었다. 그들이 당시에 생각했던 인권 개념의 범주 안에는 여성이나 어린이 그리고 흑인 노예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두 화두가 민주주의와 경제였다. 한 쪽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전면에 부각시켰고, 다른 한 쪽은 ‘잘살아 보세’의 신화를 창조하고자 하는 경제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어떤 사람은 야당은 진영논리에 빠져 있고, 여당은 서민들의 관심사에 접근했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야당의 전략 실패의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를 좀 더 총체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잘 살펴보면 민주주의와 경제라고 하는 개념의 양극화가 한국 근대사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를 동시에 수용하지 못하고, 어느 한 쪽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상황이 바로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모순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경제와 동시적 해결과제의 사안으로 보지 않고, 선후적인 관계로 파악하고, 한쪽이 먼저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다른 한 쪽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이나 이번 대선에서 읽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점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민주주의 가치는 나중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럴 경우 생길 수 있는 위험이 있는데, 그 위험에 대해서 둔감한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은『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에서 시장사회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으로 불공정과 부패를 예로 들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시켜서 이해하는 사회의 위험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샌델의 지적을 다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는 존재하지 않을까? 자본주의와 경제는 어떤 식으로든 양립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잘 살기만 하면 기존의 중요한 가치들은 폐기되거나 연기되어도 되는 것일까? 특정한 계층을 배제 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경제가 선순환 관계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이제는 현재의 자신의 이익이나 경제의 문제만을 보지 말고, 국가 전체가 지향해야할 지향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글/ 서기원(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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