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효도(蚤蚊孝道)의 정신
우리 옛 선조들의 효행을 적은 명륜록(明倫錄)을 보면 이따금씩 ‘조문효도(蚤蚊孝道)’란 말이 있다. 조문(蚤蚊)이란 벼룩과 모기란 뜻인데 밤에 부모와 잠을 자는데 벼룩과 모기들을 자식이 자신의 몸으로 유인하여 부모를 물지 않게끔 했다고 하여 조문효도라고 말한다.
벼룩이나 모기가 흡혈(吸血)하여 배부르면 다른 사람한테 달려들지 않는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 20여 년 전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병아리 팔겠다고 장사꾼이 오면 아이들이 병아리를 사서 가지고 놀다가 죽으면 따뜻한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마음이 아파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리스 신화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 세상에 불과 기술을 보내줬지만 그것만으로는 공동체를 이룰 수 없어 제우스의 아들 헤르메스가 법과 수치심을 추가로 선물했다고 전한다. 인간이 부끄러움을 모르면 법질서가 유지되기 힘들다는 뜻이다. 법과 수치심의 효용성은 이런 데 있다. 자동차가 막 달리는데 신호체계에 문제가 있다면 일정한 절차를 통해 고쳐야 하고, 그때까지는 누구나 신호를 지켜야 교통질서가 유지된다. 사람이 살다보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다. 그러면 죄송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에 앞서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야 한다. 그런데 부끄러워 할 줄 모른다는 것은 양심이 없고 효행하겠다는 착한 마음이 없고 착하게 살아보겠다는 의지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평소 정분(情分)을 나누면서 사랑을 싹 틔우며 살아간다. 그런데 지식인입네 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그 흔한 시국선언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앵무새처럼 외치지만 사실은 ‘법치주의의 위기’라고 해야 옳다. 서울시청 앞의 서울광장에 나가보면 법치주의의 위기를 자주 절감하게 된다. 서울광장은 시민들의 도심 휴식처로 인기다. 잔디나 분수대 위를 마음껏 뛰노는 어린이들과 소풍 나온 가족들,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의 유쾌한 대화와 웃음소리가 어우러지는 곳이다. 그런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유롭고 행복해진다. 이런 것을 보고 사람들은 ‘평화의 광장’이라고 말한다.
나를 뽑아주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겠다고 굳게 약속하고 당선이 되면 그 약속을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이 정치인인 것 같다. 2개월이 지나서야 국회를 개원했는데 국회의원들은 서로 헐뜯기로 일관하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화가 치민다. 자기들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더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교육자로써 아이들을 가르칠 때 뭐라고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이 부족한 사람들은 남을 헐뜯고 흉보기를 좋아하지만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감싸주기를 좋아한다. 각종 방송 매체들도 정확한 정보를 보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귀감사례나 좋은 일에 포커스를 맞춰 보도하면 사회분위기는 밝아질 것이다. 예를 들면 광우병의 위험을 과장 또는 오역(誤譯)한 허위 사실을, 그것도 정권에 대한 적개심이 낳은 악의적 보도를 ‘공익’이라고 주장하는 것부터 철면피하다. 그것은 보도가 아니라 선동이었다. 언론의 자유에는 사회적 책임이 동반된다는 것을 모르는가. 왜곡보도로 농정(農政) 관계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형사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법이 일상화돼 있다.
그것도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과 미래세대를 가르치는 교원들, 사실보도와 비판에 충실해야 할 일부 언론 종사자들이 앞장서고 있다. 전직 대통령마저 국민이 선택한 정권을 향해 들고 일어나자고 선동한다.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불법이 아니라고 억지를 쓴다.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아닐 수 없으니 이 나라 법치주의가 벼랑 끝에 섰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하는 사람이나 사회지도자는 모든 국민이 벼룩과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조문효도(蚤蚊孝道) 정신이 깃들 때 모든 사람들이 지도자들을 존경하고 신뢰 한다는 사실을 알길 바란다. 글/ 박태원(논설위원, 초성초등학교 교장, 서정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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