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노처녀 세상'
생각해 봅시다
노처녀 세상
1920년대 고무공장 아가씨들이 입고 다녔던 동강치마는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땅을 쓸고 다녔을 만큼 길었던 치마가 겨우 발목을 드러낼 정도로 짧아진 것뿐인데 한 뼘 남짓 노출된 그 발목의 충격이 얼만했던가는 당시 유행했던 공장아가씨의 발목노래에서 알 수 있다.
‘공장아가씨 발목은/ 맷돌로 깎았는가/ 보기만하여도 어질어질하네/
공장아가씨 발목은 살구나무로 깎았는가/
보기만하여도 신침이 도네/ 공장아가씨 발목은/
마개 빠진 술병인가/ 보기만하여도 알딸딸하네.’
발목노출에도 당시 사람들은 큰 충격이고 호기심이 유발했던 것 같다. 프랑스 명사에 남녀를 가르는 성(性)이 정해져 있듯이 한국귀신에도 성별이 정해져있었다. 장독대에 침입하여 간장을 시게 하는 귀신은 남성의 수(雄)귀신이고 장독대 옆에 새끼를 두르고 여자의 버선을 끼워 놓은 것은 여성의 치부인 다리를 연상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옛날 사람들은 여자의 발목만 보아도 머리가 돌고 입에 신침이 돌며 술에 취하듯 남자들을 황홀하게 했다고 한다. 콜라병도 여자의 육체미를 생각하여 만들어진 병인데, 남자들이 여자의 아름답고 풍만한 육체를 생각하며 목마를 때 콜라를 마시면 얼마나 시원하고 꿀맛 같을까 생각만 해도 그 아이디어는 대단하다.
‘이 내 팔자 사나워 사십까지 처녀로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세상에 태어나지 말 것을…’ 조선 후기 가사(歌辭)문학 중에 '노처녀가'가 있다. 이 작품의 노처녀는 몰락한 양반 집안에 태어난 탓에 쉽사리 배필을 찾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한다. 양반 체면을 따지는 부모가 사윗감 고르는 눈이 높다 보니 어느덧 중매쟁이도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노처녀는 ‘노망한 우리 부모 날 길러 무엇하리/ 죽도록 나를 길러서 잡아먹을까 구워 먹을까’라며 원망한다. 요즘은 여자들이 시집 갈 생각을 안 한다. 아가씨의 몸매와 예쁜 외모도 모두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무한정 아름다운 몸매와 얼굴을 영원토록 간직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 초혼(初婚) 연령은 1981년 23세였지만, 지난해 29.1세로 높아졌다. 중·고교 졸업 여성이 평균 27.9세에 면사포를 쓰는 반면에 대졸 여성은 29.2세다. 결혼을 원치 않는 비혼(非婚) 여성도 늘어났다. 20~40대 여성 중 47.1%가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스라엘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여자는 2년 남자는 3년간 군인입대 후 대학을 진학시켜야 애국심도 생기고 분단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통계청이 지금 35~39세 미혼 여성의 혼인 상태를 추정했더니 72.8%가 50세가 돼도 미혼 상태로 남을 것으로 나타났다. 35~39세 미혼 여성 25만4000여 명 중에서 2035년에도 18만5000명이 평생 독신으로 산다는 예측이다. 같은 연령층의 남자가 50세까지 장가를 못 가는 경우도 56.3%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고학력 미혼 여성일수록 저학력 남성을 고르지 않기 때문에 서로 짝을 찾지 못하게 된다. 이대로 가면 20여 년 뒤 미혼 남성도 32만3000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요즘은 딸을 선호하는 시대이므로 딸을 낳기 위해 딸 낳는 방법을 배우려고 산부인과가 문전성시라고 한다.
미혼 남성과 여성이 늘면 저 출산이 심해져 경제활동인구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미혼 여성이 직장을 잃게 되면 금방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노후에도 돌보는 가족이 없어 국가가 그 계층의 복지(福祉)를 몽땅 책임질 수밖에 없게 된다. 독신 인구 1500만 명인 프랑스에선 3년 넘게 동거한 커플에겐 사실혼을 인정해 보통 부부와 똑같이 세금을 공제하고 유산 상속권과 사회보장 혜택을 주는 시민연대협약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도 결혼을 부담스러워하는 세대를 이대로 방치하면 한국판 '시민연대협약'을 실시해야 할지 모른다. 결혼 제도와 풍속, 문화 모두 바뀌는 세상이 멀지 않은 듯하다.
여성들은 혼자서 거룩하게 늙는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나 혼자 늙는 다는 것이 더 초라해 보인다. 병이라도 나면 그래도 효자 10명이 악처(惡妻) 1명만도 못하고, 효자 10명이 악부(惡夫) 1명보다 못하다는 얘기를 명심하길 바란다.
글/박태원 본지논설위원, 호원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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