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경 교수의 문화 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스티브 잡스의 가슴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미국 애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졸업식에서 연설했던 말이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일까. 2003년 처음 암 선고를 받은 잡스는 자신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위의 권고들을 강하게 뿌리쳤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육체는 영혼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남편을 설득했다. 몸을 먼저 중시하자는 뜻인데 앞에서 몸을 ‘벗어나자’고 주장하는 잡스의 연설과도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몸을 초월할수록 거룩한 존재가 된다고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몸이 없으면 어떤 존재라도 성립되지 못한다. 몸은 생물학적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것이다. 아이티(IT)혁명을 일으킨 영웅도 이 명백한 조건 앞에서는 예외가 되지 않았다. 그를 영원히 살리기 위해서는 그를 신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한 인간을 ‘신격화’하는데 있어서, 책으로 만드는 것도 어쩌면 방법이 되겠다. 그 속에는 그의 특별했던 삶의 행적과 더불어 그의 사상이 담긴 어록들이 빽빽하게 들어있기에
『스티브 잡스』, 900여 쪽이나 되는 이 책을 마침내 끝냈다. 밀린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 가끔씩 이렇게 숨 가쁜 대장정의 독서에 돌입할 때가 있다. 마라톤 코스를 완주한 것처럼 피로한 쾌감이 보너스로 주어진다. 대하소설도 아니고, 사실 이토록 두꺼운 한 인간의 전기를 읽는 것은 만56세를 일기로 떠난 그의 압축된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는 것이다. 나는 그의 빛나는 업적보다는 사적인 행적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인류에게 미래 혁신을 가져다준 대가의 사생활이니 만큼 일반 세인들과는 다른 사연도 많거니와 비상한 인물들이 지닌 유별난 일면도 있었다.
“다르게 생각하라!”를 모토로 최고를 추구했던 기업가 잡스는 직원들에게 너무나 혹독한 상사였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사장 잡스 때문에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는 동료들의 회고담에서는, 나는 잠깐 괜한 노파심이 발동한다. 거봐, 무조건 족치면 되는 거야! 라고 의기양양하실 조직의 높은 분들.(그건 절대 아니거든요!) “물론 이윤을 내는 것도 좋았다. 그래야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윤이 아니라 제품이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이처럼 확고한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애플이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사는 21세기 최고의 아이콘 목록에 이미 올라있다. 그것이 지금 우리 삶의 풍속도를 바꿔버렸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 그게 바로 증명이 된다. 귀에 꽂은 줄을 늘어뜨리고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화면에다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이라니. 종이책을 읽고 앉아있는 나 같은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만 같은 분위기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이게 다 스티브 잡스 때문이다. 이제 학생들은 어깨가 휘는 무거운 책가방으로부터 해방될 것이고, 교양과 학식 있는 집안의 상징물로 거실 한 칸을 차지했던 책장은 거추장스런 구닥다리 가구가 되어버릴 것이다.
“훌륭한 예술가들과 훌륭한 엔지니어들이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인문학을 접목시키려 했던, 잡스의 이런 융합적인 의식이 아이폰을 탄생시켰다. 어쩌면 서구의 실용정신이 그를 키웠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나싶다. 그러나 그가 다만 빠르고 편리한 도구를 목표로 했더라면, 아마 우리 한국의 어떤 기업과는 게임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이 부분을 쓰면서 필자는 지금 자부심이 만발하고 있다.)
“난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를 외치며 세상을 통제하고자 했던 스티브 잡스에게 자신의 육체의 병 말고는 불가능이란 없었다. 일찍이 나폴레옹이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선포했는데 이제 인류사에는 또 한 사람의 ‘가능의 달인’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전문 자서전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이 대필한 책 『스티브 잡스』의 끝부분에는 잡스 자신이 직접 쓴 글이 있다. “애플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는 우리의 혁신에 깊은 인간애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가 지키며 추구했던 총체적인 정신은 결국 ‘가슴을 따르자’는 한 마디 말로 요약될 수 있겠다. ‘가슴’이라는 말의 힘은 참으로 눈물겹다. 그런데 이 가슴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지 못하고 ‘슴가’라고 거꾸로 표기해야 하는 웃기는 현상이 요즘 우리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나○수와 비키니’ 뭐, 이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다. 쳇! 그런데 이것도 다 잡스가 만들어놓은 그 아이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황영경 '스티브잡스'
황영경 교수(신흥대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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