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경 교수의 문화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친절한 혁명
혁명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어딘지 부담스러웠다. 과격하고 선동적인 느낌의 이 용어가 우리에게 무리없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두뇌혁명이나 사고혁명이라는 복합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생각을 뒤집어서 발상의 전환을 일으키자는 주의주장은 골수에 깊이 들러붙어서 인격화된 정신적인 습관을 버리자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것이었다. ‘변해야 산다!’는 강력한 메시지는 뇌세포마저도 변하게끔 스스로 최면을 걸어야만 했다.
근현대사 동안 몇 차례의 정치적인 혁명을 호되게 겪은 우리에게 혁명이란 물리적인 힘, 즉 폭력이 먼저 연관되곤 했다. 그래서 혁명은 강하고 무서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쯤의 이미지로 살아있었다. 우리는 대내외적인 정세로 인해 산업혁명 같은 거대한 세계적인 시류에 비교적 늦게 합류하여 빨리 성과를 내어야만 했다. 따라서 우리가 부담해야 할 몫이 만만치 않았다. 국가 차원의 집단에서도 물론이려니와 개개인이 겪은 정신적인 내상은 강한 트라우마(trauma)로 남아서 지금까지도 서로를 괴롭히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요즘은 이 혁명이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소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우미 역할 정도로 친근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그렇게 변하자고 다짐했건만 늘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으니 혁명이라는 촉진제를 처방전으로 내놓은 시골의사 선생님이 계신다. 박경철의 『자기혁명』, 이 책을 읽는 내내 손이 몹시 바빴다. 밑줄을 치지 않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별로 없었다. 저자의 그 빈틈없는 사유가 어디서 오는가? 답은 물론 독서의 힘이다. 그가 촌음을 아껴가며 섭렵한 책들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참 이상한 것은 이토록 ‘빡세고 쫀쫀한’ 책을 독자들이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잡다하고 허다한 업무에 시달려 늘 팽창된 채로 곧 터질 것만 같은 머리통을 이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민들. 그들은 보통 킬킬대면서 읽을 만한 꺼리들이나 선호하는 줄로만 알았다면, 그건 무척 오해였음을 이 책이 방증해주고 있다. 이제 자기 안에서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우리를 설득하고 있는 이 작가의 친절한 카리스마의 글에 독자들은 취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과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청년들과 부모로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의도로 썼다는 작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야? 잘 나가는 실용서쯤으로 알고 이 책을 주저없이 집어들었다가는 작가의 뜨거운 친절함에 갇히고 만다. 가령 도전하는 삶에 걸림돌이 되는 관습들을 깨기 위해서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인 결심에 대한 성찰을 먼저 하는데, 의지의 노력 차원이 아니라 아예 의식을 바꿔버리라는 획기적인 처방을 내린다. 좋은 습관을 만들려는 노력보다는 나쁜 습관을 먼저 내려놓으라는 것. 우리의 어깨에는 나쁜 습관이라는 모래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이것은 빙의된 귀신같으니 그 오백 명의 귀신들을 물리쳐야 한다고, 선방의 죽비처럼 내리치는 그의 일갈에 정말 어깨가 후끈거린다. 습관적으로 사는 것을 죄악시하는 저자의 서슬에는 제 아무리 모범인생이라도 야코가 팍 죽을 것이다.
시골의사 선생님은 또 중국 당송대의 한유(韓愈)의 글을 인용하며 공부의 혁명을 외친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뱃속에 글이 얼마나 들어 있느냐에 달려있다.” “신마(神馬)와 비황(飛黃)은 높이 뛰어 내달릴 뿐 두꺼비 따위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계속 배우고 공부하면 신분이 높아진다는 비유의 글인데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젊은 날에 노력하라는 말을 이처럼 고고하게도 풀어놓고 있다. 종횡무진으로 달리는 말(馬)같이 거침이 없는 그의 글에는 고삐 대신 독한 뼈대가 있기에 독자들에게 복식호흡법의 독서를 권장한다. 밥상 혁명, 아토피 혁명, 재테크 혁명처럼 온갖 혁명이라는 이름의 책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서도 아직까지 필자의 뇌리에 남아있는 제목은 『시와 혁명』이다. 젊은 날 투쟁의 삶을 마감하고 떠난 김남주 시인의 책이다.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시인에게 관사처럼 따라붙는 민족시인이라는 별칭이 있다면 그 시인에게도 그런 모자를 씌워줄 수 있을까? ‘내 시의 요람은 안락의자가 아니며 안락의자는 시의 무덤’이라고 했던 사람. 누구보다도 먼저 목소리를 높여 자기혁명에 투철했던 그 사람. 친절한 시골의사의 『자기혁명』을 읽으면서 하필 그토록 불친절했던 시절의 그 사람을 떠올릴 게 뭐람? 그나저나 선거철에만 유난히 친절해지는 사람들, 아무나 손 잡아주고 눈 맞추며 웃고… 선거가 끝난 후에도 계속 그렇게… 제발 뇌세포에게 혁명이 있기를!
황영경'친절한 혁명'
글/ 황영경 교수(신흥대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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