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이전과 이후의 사회현상을 비교하여 성찰해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고용시장의 형편은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해묵은 한 논쟁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보자. 즉 고용의 안정성이 중요하냐! 고용의 유연성이 더 중요하냐는 논쟁이다. IMF이전에는 논쟁이라기보다 지속적으로 경영계에서 유연성을 주장해 왔다. 도대체 근로관계 단절(해고, 구조조정, 권고사직등)이 쉽지 않아 경영하기가 어렵다는 것 이였다. 사실 일부 강성노조가 있는 대기업에서는 사용자의 인사경영권인 징계권행사가 노동조합의 노동삼권 앞에 왕왕이 무력화된 것도 사실이었다. 경영계는 강한 노동조합과 노동법의 경직성으로 인해 세계경제의 살벌한 경쟁판도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경영혁신을 이끌어 내기가 버겁다는 주장을 계속 해왔다. 즉, IMF이전만 해도 자본은 지속적으로 고용의 유연성을 주장해 왔고, 노동계는 고용의 안정성보다는 노동삼권에 기반을 둔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해왔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당한 IMF 경제위기 이후 고용시장은 자본의 논리가 정당성을 얻기 시작했고 결국 비정규직법이 탄생했다.
우리는 많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을 만들어낸 비정규직법의 실체는 무엇인가?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다시 체결하고 계약의사가 없는 사용자가 해고통보없이 근로관계의 단절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제도인가? 아니면 단순히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흔히 계약직이라고도 통칭되는 기간제 근로자를 양산한 것이 그 실체인가? 아니면 파견 및 도급사업장의 근로자를 양산하여 간접고용이 만연하게 된 것이 그 실체인가? 또 노동계가 주장하는 비정규직의 숫자(800만)와 정부에서 주장하는 비정규직의 숫자(600만)가 많은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근로자 3명중 1명이 고용불안에 잠 못 이루는 비정규직이라는 현실이 온당한 것인가?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사내하청근로자와 도급사업의 근로자, 용역근로자도 비정규직에 포함해야할 것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렇게 단순한 의문에 그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단순한 의문에 답변만 잘하면 끝나기에는 문제의 심각성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즉 한국노동연구원 성재민 책임연구원이 월간 <노동리뷰> 2011년 7월호에 기고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3월부터 2011년 3월까지 4년간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상황을 분석한 결과, 비정규직과 정규직간 임금 격차는 정규직의 평균임금을 100이라고 볼 때 비정규직 평균임금은 2011년 3월 기준으로 정규직의 57.3%로 나타났으며 비정규직 숫자는 2007년 577만3천명에서 2008년 563만8천명, 2009년 537만3천명으로 줄었다가 2010년 549만8천명과 2011년에는 577만1천명으로 늘어났다는 보고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점점 더 늘어만 가는 특수고용형태근로자(학습지교사등 프리랜서)는 어떻게 할것이며, 용역, 외주화등 가장 중요하고도 심각해지는 간접고용문제에 대한 해법은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이제 비정규직이라는 신분 하에서 근로조건 개선에는 엄두도 못내는 저임금 근로자가 양산되었다는 사실과 이에 편승하여 간접고용의 공과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대기업조차도 정규직채용보다는 경영효율측면에서 유리하다며 비정규직을 선호하게 되었다. 즉 일부 대기업은 갑의 신분이 되어 소사장제, 사내하청, 도급등 합법적 테두리내에서 직접 고용하지 않은 을 회사의 노동자를 자기회사 직원처럼, 아니 어쩌면 관리하기에 따라 그보다 더 잘 업무상 지시명령권을 행사 할 수 있는 명분과 노무관리 노하우를 가지게 되었다. 즉 고용의 유연성이라는 명분아래 간접고용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의 노무관리 운영방침하에서 몇 년전 결국 세계시장에서도 내노라하는 모 완성차의 하청업체 노동조합은 자신의 고용형태가 불법파견이라는 주장을 하게 되었고 경영계는 파견법위반 사실이 없다고 주장 하였지만 법적 공방의 결과, 대법원은 노동계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경영계는 아직도 완전히 승복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대기업의 단결력 강한 민주노조의 형편도 이러할 진데 취업시장에 외롭게 내던져진 개인 사정은 또 어떠할것인가? 취업을 못한 젊은이들이 자기관리 실패로만 스스로를 책망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고액과외를 못시켜주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하고, 유학연수를 못 보내주고, 지방대 출신이니까, 학점관리를 못했으니까 하는 체념하에 취업 못하는 자녀를 안쓰럽게 바라만 보는 현실이 온당한것인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일단은 호구를 연명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올바른 사회현상인가?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경제가 침체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바꾸어 나가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이 있다.
현실을 다시한번 바라보자. 이제 대졸 취업준비생, 근로자, 노동조합, 고령자,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근로자들은 취업의 산을 넘어서려거나, 넘어서도 고용 안정과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신분상의 불안을 안고, 회사의 경영방침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게 솔직한 현실이다. 이러한 사정하에 한국경제의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의 먹이사슬 같은 연결고리에서 노동자의 신분은 더욱 위축되어 가고 있고, 주40시간 노동만으로도 중산층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신분의 노동자 비율은 현저히 줄어들고 말았다. 이것이 고용양극화가 사회양극화로 이어진 원인과 결과이다 즉 저임금을 받는 가장 혼자만의 힘으로는 가정경제를 이끌어가기에 버거워, 노동력만 있으면 군대가기 전 여유 몇 달이 있는 아들이든, 방학중의 딸이든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하며, 오래동안 살림만하던 부인도 틈만나면 나서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결국 가족구성원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 일해서야 겨우 중산층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단시간 근로를 장려하는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이런면에서 이해가 가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기적인 자기개발과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기에는 사회현상은 너무 버거우며, 생활상으로 우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도 일자리를 열심히 구해야 하는 사회계층이 점점 두터워 지고 있다.
사회양극화는 위험한 사회현상이다. 망징이다. 그것은 국민의 사기를 소리 없이 저하시키고 국력을 일순간에 탈진시킬 수 있다. 그런데 언제까지 우리가 고용양극화를 방치하고 구호에만 그치고 있을 수 있는가? 이제는 균형을 다시 한번 맞추어야 할 시기가 왔다. 정부는 국민의 삶과 노동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기업은 인사노무관리를 통제나 편의의 관점이 아닌 근로자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노동조합은 진정한 신 노사문화 창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특히 기업의 입장에서는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여 진정한 경영혁신을 등한시 하고 비정규직, 간접고용을 선호하여 임금 효율성에 대한 관심만 가진다면 장기적으로 기업문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기업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엄연한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능력과 실적에 따른 합리적인 차별은 허용된다는 것을 잘 아는 기업으로서 능력과 실적에 따른 인사노무시스템을 개발 할 노력을 경주하지 않고 단순히 저임금의 비정규직만 선호한다면 그런 기업은 성숙기업으로 도약할 수 없다고 본다. 고용 양극화 해소에는 정부, 기업, 근로자등 각계각층의 국민 모두가 다같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지체 할 시간이 없다.
이제는 IMF와 같은 미증유의 위기도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고용양극화 해소의 관점으로 풀어 나갔으면 한다. 그 해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국회입법이 앞으로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오던 차에 우리지역의 국회의원 총선을 50여일 앞두고 예비후보의 선거공약에도 이와 관계된 것이 있나 살펴 보았지만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역주민의 사랑을 받는 국회의원이 되려면 우선 지역경제의 정규직대 비정규직 비율에 대한 성찰과 비정규직 다수고용 사업장에 대한 파악정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에 기대하기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용시장의 차별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적인 것은 일부 지역에서 고용차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북경기 지역에서는 누가 먼저 고용차별에 많은 관심을 갖는냐도 개인적인 관심사이다. 고용평등을 통해 사회균형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달성하고, 따뜻하고 서로 서로 잘사는 대한민국, 지역사회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해본다.
홍연재'사회 양극화 현사은 고용양극화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글/홍영재(신일노동법률사무소 소장, 공인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