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이유
최근의 정권들을 차례대로 바라보면, 한 단어가 떠오른다. 그것은 바로 ‘반복’이라는 단어다. 시작은 ‘희망’ 섞인 국민들 다수의 지지로 연동되지만, 정권 말기는 언제나 ‘절망’섞인 자조로 끝나는 순환으로서의 반복 말이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제외하고 나면, 국민들에 의한 정치 역사는 그야말로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얼마 되지 않는 역사마저도 단군 이래의 오랜 역사처럼 그저 반복의 연속이었다.
반복이 지루한 이유는 이른바 새로움에 입각한 ‘변화’와 ‘발전’이 없기 때문이리라. 문민정부라고 하지만 그 외피만 바뀌었을 뿐 권위주의적 위계질서 구도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이는 국민의 정부에까지 이어졌다. 그나마 국민의 정부에서 새로운 점이 있다면 오랫 동안 반복되었던 미국의 매파 중심의 코드에서 벗어나 이른바 비둘기파의 코드에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햇볕정책으로 구체화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참여정부에까지 지속되었다. 이후에 다시 매파가 등장하여 잃어버린 10년으로 차별화 되면서 다시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반복이 지속되고 있다. 하나는 권위주의적 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다.
권위주의적 질서와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위와 같은 삶의 문법을 반복하는 한, 한국의 사회에서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한 미 대사를 지냈던 어느 분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모욕적인 발언 같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어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국인의 삶의 문법은 민주주의나 역사 그리고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이른바 이름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 북한이나 남한이나 삶의 문법 구조에서 보면 한반도의 정치 지형도는 아주 유사하다.
가족주의, 권위주의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기생하는 정치꾼들만 잠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이다. 새로움이 가능하려면 반면교사를 지렛대로 하여 포용할 것과 수용할 것이 계승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변증법이 한국사회에서는 가능하지 않으며, 소크라테스적 대화의 변증법도 작동되지 않는다.
자유롭게 말하고 토론하여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이것도 보면 해마다 국회의사당에서 연출되는 반복 반복이다. 이 얼마나 지루하고 황당한 일인가? 지금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정당과 정부에 실망하여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나름 가득 차 있다. 이러한 희망마저도 없으면 정말 절망적이겠지만, 이미 그 희망 속에서도 이미 절망이 보이기에 절망적이다. 이것이 절망적인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지겨운 반복 때문이다.
어떻게 이 지루한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떠한 정권에도 휘둘리지 않으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중립 지대가 존재해야 한다. 사람들 모두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연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조직이나 단체가 결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잘못된 정치가를 견제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비판적 지성이 많아져야 함을 의미한다.
최근에 국민들은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에서 새로운 신뢰의 아이콘으로 정치적 탈주를 시도하고 있다. 이 아이콘으로 현재는 안철수 교수가 자리하고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두 개의 정당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고자 이합집단의 탈주를 감행하고 있다. 사실 민심이 잠시 마음 둘 곳 없어 잘 알지도 모르며 정치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사람에게 이동하는 현상은 지극히 민주주의의 일천함과 천박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힘이 다시 기득권이 될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반복이 우려된다. 최근의 정치인들은 모두 초반에는 지지율이 높았다.
그래서 새해에는 새로운 정치판이 형성되는 기대를 해본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서 드러났듯이, 잘못된 것을 비판하여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비판의 아이콘으로 안철수가 자리매김 해주면 어떨까 하는 기대 말이다. 안철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신뢰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동시에 비판의 아이콘으로도 자리 잡았다. 그런데 비판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있다. 안철수가 이일을 해 내고 우리 모두가 이 일을 해 낼 때, 한국 정치는 지겨운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안철수가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을 우려하고 또 그래서 반대한다.
글/서기원(논설위원,의정부의료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