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잡년’ 어머니, 조동옥 씨!
고대 그리스 비극 중에 자신의 두 눈을 스스로 찔러서 소경이 된 왕의 이야기가 있다. 선왕이었던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비였던 친 어머니와 결혼한 왕이 있었으니 참으로 끔찍한 운명도 다 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야기가 좀 복잡하다. ‘네가 낳은 자식이 언젠가는 너를 죽이고 네 아내와 결혼하리라.’ 신의 저주를 받고도 라이오스 왕은 결혼하여 아들을 낳는다.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뿐, 도저히 불안하고 찜찜해서 견딜 수가 없는 왕은 시종을 시켜서 어린 아들을 ‘처치’하는데, 이는 바로 비극의 빌미가 된다. 훗날 다른 나라에서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여행 중에 우발적으로 한 노인을 죽인다.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생부 라이오스 왕이었던 것. 총명하고 지혜로운 청년인 오이디푸스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자신의 조국에서 왕이 되고, 라이오스 왕의 미망인 왕비와 결혼한다. 그 여인이 자신을 낳아준 생모인 줄은 까맣게 모른 채. 불의를 싫어했던 오이디푸스 왕은 훗날, 이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고는 제 눈을 찌른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어둠 속에 있거라! 보아서는 안 될 사람을 보고, 알고 싶었던 사람을 알아채지 못했던 너희들은 다시는 누구의 모습도 보아서는 안 된다.” 만인의 제왕이 수치스럽고 처참한 존재로 급락하는 순간 두 눈에서 피를 쏟으며 울부짖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전율이 온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다 용서해달라고 신께 간곡하게 회개의 기도를 올리면 충분할 것을 뭐, 그렇게 까지야? 난,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하면 될 걸 가지고 말이다.
정말 왕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 몹쓸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게 아닌가. 그럼, 제 아들과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은 그 어머니(왕비)는 어떻게 되었나? 자신의 젊은 남편(왕)이 자기가 낳은 자식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이 비운의 여인은 스스로 목을 맨다.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희대의 근친상간 죄인이 된 두 사람은 참혹한 징벌을 받았다. 과연 신들의 나라답게 그리스의 고전극에서 신의 막강한 위력 앞에 인간은 아무도 도전장을 내밀 수가 없다. 신이 곧 진리요, 법이니까.
신은 왜 그렇게 오이디푸스 집안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려야만 했나?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 왕에게 이미 문제가 있었다. 그가 젊었을 때 전쟁 중에 다른 나라에서 못된 짓을 좀 했었다.(일설에 의하면 동성애 문제였다고 한다.) 그래서 자식을 낳지 말라는 신의 명을 받은 것이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왕에게 자식까지 낳지 말라니, 신께서 너무 하신 거 아닌가. 왕권을 누구에게 물려주라고? 아시다시피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수많은 신의 계보들, 신인지 인간인지조차도 불분명한 존재들, 그들을 좀 파악하려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지만 그 신들은 불명예를 제일 싫어한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히 알게 된다.
자신들의 존엄성이 조금이라도 손상됐다 싶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 상대자를 가차 없이 응징하는 것이다. 서양의 ‘르네상스’ 이후부터 ‘인본주의’라 하여 신에게서 ‘해방’된 인간들의 간덩이가 부어올랐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들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하늘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법 중에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천륜’이 있다. 하늘의 인연으로 정해진 부모자식 간의 절대적인 금기사항.
여기 오이디푸스 왕 못지않게 천륜을 어긴 또 한 명의 인간이 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어머니’다. 호적명은 조동옥인데 나중에 스스로 ‘파비안느’라는 브라질 여자 이름을 택한다. 사춘기 딸애가 낳은 딸(손녀)을 자기가 낳은 딸로 입적시키기 위해서 브라질로 이민을 가버린 엄마. 철저하게 자신이 낳은 딸과는 인연을 끊었다.
그것이 ‘두 딸’을 지키기 위한 필사의 방법이었으니까. 김인숙의 소설 <조동옥, 파비안느>에 보면 그 기구한 사연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브라질 사람들 앞에서 그 여인은 나는 ‘개잡년’ 이다! 라고 말한다. 왜? 천륜을 어겼으니까. “기분이 나쁠 때나 슬플 때나, 심지어 매우 기분이 좋을 때도 ‘나는 개잡년이오.’라고 말했다는 어머니.” <조동옥, 파비안느>, 이 작품이야말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버금가는 절창의 비극이 아닌가. 읽을 때마다 나는 매번 전율에 떤다. 자신의 죄과에 통절하며 스스로 눈을 찌르거나 목을 매거나, ‘개잡년’ 되는 인간들도 있다. 그러나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활개 치며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들도 있다. 조동옥 씨, 남은 생을 ‘개잡년’으로 살았으니 스스로의 저주에서 이제 그만 풀려나세요!
황영경 교수의...문화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신흥대문예창작과/황영경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