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辛卯年)은 토끼의 해다. 12지(支) 동물 가운데 가장 영특하고 귀여움을 받는 동물이다. 새벽 5시부터 아침 7시에 이르는 시간대를 묘시(卯時)라 일컬으며, 그 위상은 동(東)쪽에 위치하여 목(木)의 성능을 갖고 있어 아침의 맑은 기운으로 배움의 성장하는 기세가 충천하다.
그래서 학자의 풍모라고도 하지 않는가. 새로운 시작 그 맑고 영롱한 기상은 자칫 약자로 취급되지만 약자이기에 모든 소리에 경청하는 미덕이 있고 민감하여 모든 사태를 귀로 터득하는 슬기로움이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음(陰)의 상징이자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달 속에 방아를 찧는 모습으로 , 민화에서는 무시무시한 강자에게 담뱃대를 물리고 눈 하나 깜짝 안하며 곤두서서 그와 대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징들은 강력한 지배자 호랑이에게 맞서는 지혜로움에서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는 철학을 음미케 한다.
이를 통해보면 토끼는 거대한 땅덩어리의 중국에 비해 우리 한반도를 상징하기도 하며 또 다른 면에서 무력을 앞세운 우직한 무인(武人)들과의 사이를 조절하면서 담뱃대에 담배를 채워주며 오히려 그들을 설득하는 문인(文人)의 영특함이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면이 있다. 그것은 별주부전에서 보이는 <토끼의 간> 이야기다.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43 김유신(金庾信)전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김춘추는 642년 신라의 거점인 대야성이 백제에게 정복당하고 그의 딸과 사위가 죽임을 당하자 고구려에 들어가 보장왕과 연개소문에게 구원을 청한다. 그러나 오히려 첩자로 오인되어 감금당하고 죽음을 맞게 되었으나 고구려 신하 선도해(先道解)로부터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듣고 지혜를 발휘하여 신라로 돌아가면 고구려가 원하는 옛땅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풀려나게 된다. 이후 신라로 돌아간 김춘추는 오히려 힘을 모아 고구려를 쳐서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춘추가 토끼가 되고 고구려 보장왕은 용왕, 연개소문은 거
북이로 상징되는 이야기와 비교된다. 이 구토설화(龜兎說話)는 오늘날 전해오는 <토끼와 거북이>로 고대 소설의 <별주부전>, 판소리의 <수궁가>, 이해조의 신소설 <토의 간>의 근원이 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의 민족 설화의 대표적인 이 토끼의 상징이나 토끼의 간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혹자는 한국의 지형이 호랑이가 대륙을 향하여 으르렁대고 있는 모습으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토끼의 모습으로도 보는 데는 우리 한반도가 처한 지형적 약세로도 간주된다.
부딪힐 필요가 없이 수용하고 극복해야할 때 토끼의 지혜는 위대하다.
애초에 토끼를 얕잡아보고 토끼를 유인하여 생명과도 같은 간을 달라고 하는 억지와 무모한 요구를 하는 거북이, 또 거북이를 우습게 여겨 쉽게 유인되어 끌려간 토끼의 허황된 욕심도 한 몫 하여 위기를 모면 하는 데는 양자 모두에게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세계정세에서 중국과의 관계에 상징하는 바가 많다. 비록 중국만이 아니고 일본이나 러시아,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 토끼의 간 > 이야기는 상당한 비유가 된다.
먼저 이 모든 상황과 조건을 애초부터 파악한 위약한 토끼는 막강한 대결 다시 말해서 힘으로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대할 때 끝까지 토끼처럼 그들의 허망한 요구를 들어주고 그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후에 알게 한다는 지혜와 연이나 얄팍한 잔꾀의 토끼처럼 쉽게 잡아먹힐 수 있는 토끼 자신의 상황을 똑바로 인식하여 애초에 끌려가지 않도록 지혜를 총 동원해야한다는 점이다.
혹자는 토끼가 잘 뛰는 강자라고 하고 혹자는 생김새 자체가 약자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도 때에 따라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어 약자가 강자를 강자의 힘으로 스스로 넘어 가게 하는 우리의 씨름의 원리처럼 그 모양새는 잡아먹힐 만큼 작고 귀엽지만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 토끼의 총명함이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토끼의 해를 맞아 어디로 튈지 모르며 그 큰 눈을 깜빡이며 오물오물 뭔가 씹고 있는 귀엽고도 무서운 토끼의 위상을 본다.
무세중 시론-작지만 큰 토끼
무세중(논설위원, 통일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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