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기업, 교회 닮은꼴 세습-
교회와 기업 그리고 북한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교회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단체이고 기업은 철저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단체이며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한반도 북쪽에 위치한 정치집단의 몰상식한 행동일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종교와 기업 그리고 국가는 그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는 다르지만 작동하는 기제는 그 구조상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일성의 기제(mechanism)는 세습으로 대변된다. 나는 이번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보면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관점에서 보다는 문화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내외신 기자들의 동의하고 있는 바와 같이, 김정일이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을 세습하는 과정의 명분 쌓기 용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김일성 이래로 지속되어온 세습과 이를 원만하게 이루려는 과정에서 도발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중세시대도 아니고 조선왕조 시대도 아닌데, 아들에게 자신의 권력이나 직위를 물려준다는 것이 말이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김정은의 권력세습은 합리성 효율성 등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의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문화지체현상’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권력세습이 남한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모든 기업,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들이나 딸에게 세습하는 문화지체현상으로서의 ‘풍속’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연평도 도발이라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최근에 한 기업이 성공적으로 세습을 마무리한 바 있다. 물론 그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북한의 세습에 반대하고 비판하면서도 그와 똑같은 논리로 기업의 세습을 비판하고 문제 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자신이 평생 가꾸어 놓은 재산을 자식에게 세습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모든 사람의 인지상정이 아닌가 하고 말하면 할 말이 없다.
최근에 교회도 심심치 않게 세습 문제로 언론에 기사화 되곤 한다. 교회를 개척해서 평생 노력하여 ‘훌륭한’ 교회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이 나와 피한방울 섞이지 않는 남에게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이미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자신이 개척을 했으면 세습을 해도 무방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들을 일부 목회자들은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목회자가 가톨릭의 신부처럼 가족이 없다면, 아마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 세습의 문제도 결국은 앞의 북한이나 기업의 경우처럼 가족의 문제로 귀착된다.
위에 열거한 세 가지 경우의 밑바닥에는 한국 사회가 아무리 발전하여도 쉽게 깨지지 않는 ‘가족주의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가족주의의 연원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는 몰라도 가족은 남북한을 통 털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모든 연고주의(緣故主義)의 시작점을 형성한다. 이른바 우연히 같은 가족으로 태어난 인연(因緣)의 고리로 연결된 기제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단순히 아들이나 딸이라는 피를 나눈 혈연(血緣)을 넘어서 가족이나 친척, 우연히 만나게 된 학교의 인연인 학연(學緣)과 우연한 장소의 인연에 입각한 지연(地緣)이라는 인연의 순환 고리가 한국 사회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겠는가? 그렇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정상적인 사람의 팔이라면 팔은 안으로 굽지 절대로 밖으로 굽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인연(因緣)의 순환 고리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평생을 노력해서 높은 자리까지 왔는데, 피의 인연이나 땅의 인연이나 학교의 인연이 없는 사람은 어찌하란 말인가?
아무리 노력했어도 위에서 말한 인연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고 모두 희망을 버려야 한다면? 그렇게 되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는 것이다. 세습은 능력에 따른 힘의 분배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없는 능력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물론 여타 세습으로 전수된 힘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선량한 다수에게 고스란히 다가온다. 그 무리수가 우연히 연평도에 살았던 이유 때문에 연평도 주민들에게 선의의 피해로 고스란히 다가온 것이다. 한국사회(남한/북한)는 언제까지 인연에 따른 삶의 반복과 윤회전생을 반복할 것인가?
생각해 봅시다-북한, 기업, 교회 닮은꼴 세습
서기원(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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