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존재감, 그거…
요즘 ‘미친 존재감’이 뜨고 있다. 이는 드라마 속의 인물이나 연예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누구나가 욕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의 자기표현 욕구야말로 예술창조의 한 원천이다. 지난 무렵 엄청난 그 예술품을 대하고는 가슴 속에 켜진 황홀한 심사를 한동안 끄지 못했다.
사람은 아니었고, 바로 집 앞 벌판에 서 있는 단풍나무 한 그루 때문이었다. 군상으로 몰려있는 녹색의 숲일 때는 그 나무의 존재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초겨울 어느 날 저녁 문득 홀로 장엄하게 타오르고 있는 단풍나무를 발견하고는 아주 특별한 환희심을 체험했다.
다른 나무들은 이미 반쯤이나 낙엽을 벗어 버렸는데 늠연하게 화엄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 앞에서 저절로 시(詩) 한 구절이 떠올랐다. “뼛속을 긁어낸 의지의 대가로/ 석양 무렵 황금빛 모서리를 갖는 새는/ 몸을 쳐서 솟구칠 때마다/ 금부스러기를 지상에 떨어뜨린다.”(김중식, <황금빛 모서리>에서)
죽기 전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한다는 가시나무 새의 전설도 있다. 마지막 절정을 불태우는 단풍의 아름다움은 애절하고 숭고했다. 지금은 그 단풍잎들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앙상한 빈 가지뿐이다. 꿈결인가 싶게 빛나고 고왔던 시간은 아주 짧았다. 티베트 고원에 에 위치한 나라 티베트에는 온갖 색깔의 모래알로 화려한 만다라 그림을 완성하고는 바로 지워버리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고 한다.
소중한 것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우치는 수행법일 수도 있겠다. 존재는 존재 너머에서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현상에 더 많이 집착할 수밖에 없다. 애착과 소유욕을 끊는다는 것은 의지력 훈련이 잘 된 여간한 도인의 경지가 아니고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일 터.
김중식 시인의 말처럼 의지의 대가로 한 줌의 금가루라도 얻을 수 있다면 소위 ‘노다지’를 캔다는 얘긴데, 뼛속을 긁어낸다는 말이 영 맘에 켕긴다. 내 몸 속의 뼛가루가 결국 금부스러기로 변한다는 연금술의 비밀을 이처럼 공공연하게 퍼뜨리는 시인이 있으니, 아무래도 서울 종로 삼가에 모여 있는 금방 사장님들이 들고 일어날 것만 같다. 아무튼, 요즘 금값이 마구 뛴다는데, 미친 존재감 증후군에 시달리시는 분들은 자신의 뼛속이라도 긁어 보시길.(만만치 않은 존재 비용을 맨땅을 파서 마련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압축해서 한 번쯤 피워 올릴 수 있다면 후회 없는 삶이 되려나. 시도 때도 없이 자기를 증명하는 일이란 너무 피곤하다. ‘어필’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미친 존재감이라도 연출해야 하는 스타들을 보면서 웃는 대중들, 한 번쯤은 고민했을 지도 모른다. 나도 ‘벤치마킹’ 할까, 말까.
미국에서 잘 나가던 사회학자 모리 슈워츠는 노년에 루게릭 병에 걸려서 근육이 굳어가는 중에 『모리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다. 자신의 병든 몸을 공개하면서까지 그는 우리에게 간절하게 삶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고 갔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자신의 참 자아를 잃지 않으려 했던 그의 모습은 그대로 살아있는 ‘교재’가 되어서 티브이에 생중계되었다.
그는 인간이 위대한 것은 몸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과 통찰력, 직관을 지닌 존재들이기 때문이라며, 병에 걸리기 전보다 오히려 더 자신을 찾았다고 말한다. 대단한 존재감이다. 타인과의 영적인 유대를 중시했던 그가 남긴 최후의 전언의 요지는 역시 사랑이다. “사랑으로 가득 찬 기억들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고 우리 마음의 평화를 지켜 줄 것입니다.”
연말에 몸은 늘 춥고 마음까지 가난해지는 소시민들에게 한국의 백석 시인도 아주 오래전부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릴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시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서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詩,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애초에 하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니? 자, 어쩌겠는가. 사랑밖에 난 몰라, 그런 유행가라도 실컷 불러보면서 내 작은
존재감이라도 확인해봐야지.
황영경 교수의 문화오딧세이'책이 있는 풍경'
황영경/신흥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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