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들은 그냥 빨리 달리세요!
이번 정초에 엄지손톱 끝이 조금 갈라지거나 이지러진 분들, 매우 원활한 소통의 삶을 살고 계시는 현대인들이다. 전시교전 중도 아닌데 느려터지는 것을 혐오하다 못해 죄악시하는 우리 한국 사람들과 즉각적인 교신의 문자 시스템은 찰떡궁합이 아닐까. 그러나 속도는 자꾸만 속도를 추구한다. 금방 반응하지 않는 상대, 소위 ‘문자를 씹는’ 경우에는 오해의 상한선을 넘어 상상을 초월해가며 과민함에 빠진 경험들, 다 있으실 것이다. 무한질주의 광속 시대에 차분한 여유는 오히려 둔감하거나 예의 없음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책 『예언자』로 유명한 칼릴 지브란은 삶을 행진하는 데 있어서 “걸음이 느린 사람은 생이 너무 빠르다고 열 밖으로 나오고, 또 걸음이 빠른 사람은 생이 너무 느리다고 열 밖으로 나온다.”(시집 <모래와 물거품>에서)고 풍자했다. 그렇다. 아찔한 속도에 지칠 때마다 어디 오지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어진다. 오래 전 동남아의 한 나라, 시골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무척 빨리 나왔다. 한국 사람들은 밥을 빨리 주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주인아저씨가 직접 가지고 나왔다. 한국에서 몇 년간 취직해서 돈을 모아 식당을 차렸다는 그 사장님은 우리 한국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이든 빨라서 좋은 한국, 이렇게 국위선양이 될 때도 있긴 있다.
신속 정확, 이런 단어가 우리 삶에서 최고의 모토가 되던 적이 있었다. 느린 것을 게으른 것과 동일시하여 상대를 얕잡아보거나 업신여겼던 오류의 경험들도 다들 있으실 것이다. 올해가 토끼의 해인지라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 속의 토끼를 상기하게 된다. 토끼가 우리에게 빠른 동물로 인식된 것은 다 거북이 때문이다. 양육강식의 먹이사슬 관계망에서 보자면 토끼는 늘 먹히지 않기 위해서 쫓겨 다니는 가련한 신세의 미물에 해당된다. 그러니까 세상사에는 상대평가적인 측면에서 더 빠르거나 더 낫다는 비교의 순위가 있을 뿐이지 절대적인 우월은 있을 수 없다.
토끼와 거북(자라)이 대립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고대소설 <별주부전>과 판소리 <수궁가>에도 나온다. 햇볕에 널어 말리기 위해서 꺼내놓은 자신의 간을 다시 가지고 오겠다며 임기웅변의 기지로 용왕의 신하인 자라를 속인 토끼는 꽤나 지혜로운 동물로 그려져 있다.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별주부의 꾐에 빠져 선뜻 용궁으로 따라나선 토끼의 경거망동에 후한 점수를 주고, 용왕의 병에 어째서 토기의 간이 좋은지는 의심하지 않고 이런 ‘삐딱한’ 눈으로 보자면 더욱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다. 어쨌든 우리 인간도 토끼처럼 수시로 간을 넣었다 뺐다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좋으련만.
작가 최인훈은 <구운몽>에서 오늘날 토끼란 동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토끼의 헛된 꿈으로 인해 토끼는 이미 토끼가 아니라는 것이다. “토끼의 뒷다리는 말의 뒷다리가 되고 싶은 욕망으로 중풍에 걸렸으며 밤송이처럼 동그란 등은 집채 같은 코끼리 등이 되지못한 열등감으로 애처롭게 꼬물거린다.”
짧은 다리를 갖고 태어난 토끼가 겁 없이 질주하는 속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토끼 스스로를 포기하는 길밖에 답이 없을 때, 그들은 지구를 탈출하여 달나라로 가서 계수나무 밑에 떡 방앗간이라고 차려야 하나? 아니 뭘 그렇게 세상을 어렵게 사나. 차라리 말(馬)상으로 페이스 오프 성형이라도 해서 이 땅에 길이길이 살아남으면 되지. 이건 너무 썰렁한 신묘년의 농담인가. 올해도 우리 모두 토끼처럼 간뿐만 아니라, 쓸개와 창자, 이런 걸 다 빼놓지 않아도 그저 아무런 뒤탈 없이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는 없을까. 그런데 최인훈은 <구운몽>에서 다시 토끼같이 타고 난 미모와 토끼 같은 가벼움을 부러워하는 말과 코끼리라는 동물도 있다고 뒤집고 있으니 토끼들이여, 그냥 빨리 달리세요!
문자 연하장 덕분에 생면부지의 사람들한테서까지 무더기로 새해 안부를 받고 보니 내가 띄운 정초 문안인사라는 것도 그저 입에 발린 소리가 돼버린 게 아닌가, 염려된다. 속도의 시대에 무례하지 않으려고 재빠르게 답장을 누르긴 했는데 익명의 문자에는 난감했다. 아, 제발 발신자님의 이름을 좀 밝혀주세요! 당신의 매너가 제 매너를 좌우합니다.
황영경 교수의 문화 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글/황영경 교수(신흥대 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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