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주민들은 백주 대낮에 갑작스럽게 공격을 당하고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고, 갑작스럽게 전쟁의 공포 가운데 휩싸이게 되었다. 직접 당하지 않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총소리나 대포소리는 경험해 본 사람에게는 쉽게 잊혀 지지 않는 공포 그 자체이다.
특별히 아이들이 겪었을 두려움과 공포가 더욱더 염려스럽다. 이들에게 이러한 공포는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주민(住民)들이 갑작스러운 공포와 슬픔에 빠졌는데, 주민들과 백성들을 위로해야할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백성들을 두 번 슬프게 하고 두 번 죽이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공포가운데 있는 연평도 주민을 위로한다고 간 사람들의 행동이 참으로 가관이다. 폭탄에 그을린 소주병을 보고 폭탄주라고 농담을 하는 것이나, 군복을 입고 폭탄에 그을린 보온병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것이나, 모두 다 썩어빠진 정신상태의 정치인들의 행태이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며,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군복입고 자신을 생색내고 보여줄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의 생활필수품이며 주거공간이고, 이 보다도 더 시급한 것은 정신적인 안정이다. 정신적인 상처를 싸매주는 것이 급선무란 말이다.
정치가들이 그들에게 가서 했어야 할 일이 바로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그들을 보듬는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신속한 대책으로 구체화 되어야 했다. 우리가 왜 정치인들을 우리의 대표로 뽑았겠는가? 바로 그렇게 힘들 때, 혼자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래서가 아니겠는가? 정치가 무엇인가? 그들을 대표해서 그들과 함께 하는 것 아니겠는가? 백성들과 더불어 기뻐하고 백성들과 함께 슬퍼하는 것이 정치 아닌가?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정치의 주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백성들은 정치의 객체라고 생각한다. 다스려져야 하고 통치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연평도 사건 이후의 최근의 정치인들의 행태는 바로 주체를 주체로 간주하지 않고 객체로 간주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전당이 국회이고 통치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이 국회이지 민의(民意)대변하는 곳이 절대로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폭력배의 무리들에게서나 보이는 행태를 전 세계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당당히 행할 수 있겠는가?
진정 사랑하는 연인은 상대방의 기쁨과 아픔을 나눌 줄 안다. 상대방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 되고 나의 기회가 되며, 상대방의 기쁨이 나의 슬픔이 되고 손해가 된다면 그것은 연인 사이가 아니라 적(適)의 관계이다.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가족 성원의 슬픔이 곧 나의 슬픔이 되고, 우리 가족 성원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어야 진정한 가족의 일원일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그는 가족이 아니라, 타인 혹은 적에 불과하다. 아니 남의 불행을 자신을 알릴 수 있는 호기(好機)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적(適)이다.
연평도 주민은 두 개의 적(適)을 만날 슬픔에 지금 힘들다. 갑작스럽게 나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는 적(適)과 나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동지로부터 배신당한 상태에서 새로이 깨닫게 된 적(適) 때문에 힘들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의 슬픔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아귀다툼을 하는 그들을 보면 참으로 개탄스럽다.
우리는 언제 쯤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고(與民同樂), 백성과 더불어 슬퍼하는(與民同哀) 정치가를 만나게 될까? 이제부터라도 정치가들에게 평점을 주는 인터넷 사이트라도 열어야 하지 않을까? 프로 축구 선수에게 시합 후에 언제나 평점을 주듯이, 네티즌(누리꾼)들이 평점을 내려서 낙선운동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백성을 무시하는 정치인들을 그저 보고만 있을 것인가?
서기원-여민동락(與民同樂), 여민동애(與民同哀
서기원(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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