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날씨는 쌀쌀하다 못해 추워져 가을이 아닌 겨울과 같은 느낌이 드는 오늘, 숨 가쁘게 달려온 2010년이 이제 저물어 가는 11월, 낙엽은 떨어져 가지만 우리의 보훈은 또 한번 눈을 뜨는 시기이다.
먼저 11월 3일은 광주학생독립운동 81주년이 되는 날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발생한 조선 여학생 희롱사건이 불씨가 되어 11월 3일 명치절(일본 국경일)에 광주고보, 광주농교 등 4개 학교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이 합세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항일 시위운동이었다.
광주에서 불붙은 학생들의 항일투쟁은 요원의 불길처럼 파급되어 전국적 독립만세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일본 학생들의 무례함과 일제 경찰의 차별행각이 그 원인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3.1운동 이후 나타난 일제의 기만한 문화통치 실상과 이로 인해 나타난 1920년대 노동자, 농민, 학생운동 등 사회운동의 활성화, 그리고 1929년 세계 경제대공황까지 여러 요인이 있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광주 학생독립운동을 광주 지역만의 학생운동으로 만들지 않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고 만주와 상하이, 베이징, 일본에서도 시위가 일어났을 만큼 거족적인 독립운동이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11월 17일은 제71주년 순국선열의 날이면서 1905년 우리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던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이다. 일제는 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여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그 후 일본은 군대를 주둔시킨 뒤 우리 영토 내에서 일본군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였다. 전세가 일본에게 기울자 영국과 미국은 일제의 한반도에서의 독점적 지배권을 인정하고 일본이 러시아와 포츠머스조약을 체결하게 도와주었다.
이윽고 1905년 11월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서 궁성을 포위한 후 광무황제와 대신들을 협작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말았다. 예전에는 을사조약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조약'이라 함은 국가 간의 권리와 의무가 상호 협의에 따라 법적 구속을 받도록 규정하는 행위 또는 협약 등을 말하므로 국가 간의 합의가 아닌 일본의 강제에 따라 억지로 체결된 '을사늑약'은 ‘조약’이 아니라 ‘늑약’이라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외에도 11월 20일은 1897년에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고 자주민권과 자강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독립문이 건립된 날이고, 11월 27일은 1943년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 받은 카이로선언이 있었던 날이다.
보훈과 함께 깊어 가는 가을, 국가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졌던 선열들의 희생을 기리고 그분들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은 바로 오늘의 젊은 세대가 신의를 지키는 것이며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일인 것은 자명하다. 우리 젊은 세대들은 선진일류국가를 향한 꿈을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한다. 그것이 앞선 세대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건강하게 자랄 젊은 세대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글/ 안상훈(의정부보훈지청 보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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