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주 기자수첩 ‘상생相生 문화’
상생(相生)은 음양오행설에서, 금(金)은 수(水)와, 수는 목(木)과, 목은 화(火)와, 화는 토(土)와, 토는 금과 조화를 이룸을 이르는 말로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가는 것으로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루 갖춘 사람만이 그 조화로움으로 이 세상에 상생의 덕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세상을 혼자서만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와 신뢰를 가지고 함께 한다는 것 또한 상당히 어려운 일로 무한경쟁 그리고 불신이 사회 전반에 뻗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경쟁이 아닌 함께 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처럼 내가 아무리 신뢰감을 형성하려 해도 상대방이 나의 마음을 모른다면 어려운 일이고 상대방이 나에게 아무리 신뢰감을 주려 해도 내가 그 사람의 속내를 몰라 의구심을 품고 있다면 서로 간의 신뢰가 형성되기가 어렵다. 이러한 일들은 친구 동료 지인 가족 등등 어느 곳이건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삶을 영위하는 곳에서는 당연히 일어난다.
또한 상생의 뜻을 생각해보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혹은 같이 길을 가는 사람 등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는 있으나 자본주의 무한경쟁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것과 내가 남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 둘 다 어려운 일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지만 술자리에서 건배를 할 때 ‘위하여!’라는 소리를 외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이 너무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가 나를 위하여, 우리 조직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마치 상생의 기본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사회는 이런 상생의 문화를 꽃 피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계속해서 상생을 주제로 기사를 올리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 상편 제2장을 보면 ‘유무상생(有無相生)’이란 구절이 나온다. 뜻은 있음과 없음이 서로 함께 사는 대화합의 정신을 강조한 노자사상의 하나다.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데 급급한 현대인들이 되새겨야 할 좋은 말이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상생의 원리가 21세기 인류를 이끌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본 기자가 지난 호에 ‘배려와 양보 그리고 여유’라는 칼럼에서 소개했듯이 우리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배려와 양보 그리고 여유’를 가지자고 했다. 이런 생각으로 상생의 문화가 번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겸손(謙遜)은 강한 정신력에서 나오다’라는 말이 있다.
이제 우리들은 강한 정신력으로 겸손해야 할 것이다. 약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은 교만해진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감추기 위해서다. 배려와 양보 그리고 상생이야 말로 강한 정신력으로 여겨진다.
이제 얼마 있으면 서울과 부산의 시장 보궐선가가 치러진다. 지금 후보들의 말장난으로 나라가 혼탁해지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조금은 상대방을 고려하면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무튼 정치인도 그렇지만 우리네 서민들도 이런 상생의 문화를 언제나 생각하면서 생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글/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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