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림의 이야기 정거장
역사숨결 문화콘텐츠 월이(月伊) 가꾸기
옛 소가야인 남쪽 공룡의 나라 고성(固城)의 문화상품 콘텐츠 월이(月伊)가 부쩍 조명을 받으며 별처럼 반짝거린다. 시, 소설, 연극, TV, 춤, 판소리, 초혼제, 학술세미나, 달력, 월이 둘레길 걷기에 그치지 않고 채색도자기와 목각인형에 막걸리까지 월이 이름을 달고 선보여 문화와 역사의 숨결을 엿보게 한다.
언제부턴가 여기저기서 진주에 논개가 있다면 고성엔 ‘월이’가 있다는 목소리가 크게 들려도 전혀 낯설지 않다.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 때 거둔 대승 중에서는 당항포 대첩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 숨은 공로자가 바로 고성 무기정 기생 월이라는 이야기다. 월이는 일본 밀정 첩자의 지도를 몰래 변조하여 이순신장군으로 하여금 당항포 해전에서 대승을 이끌게 한 장본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당항포 쪽 간사지에서 바닷물길이 고성만 수남동 철뚝 앞 바다를 통해 통영, 남해로 연결되도록 월이가 먹물 붓으로 감쪽같이 바꿔놓은 것이다. 간사지가 막다른 바다하고도 그 끝인데도 말이다. 요컨대 이순신 장군이 왜군들을 외통수로 구석에 몰아넣어 몰살시킨 승전의 출발점이 ‘월이’인 셈이다. 지금도 간사지 바다를 가리켜 그때 왜군들이 속았다고 ‘속싯개’라 한다.
2017년 제1회 <월이제(月伊祭)>가 고성에서 열렸을 때 그 중심에 박서영 향토문화 길라잡이가 있다. 그녀는 지난 달 10월 26일 격년제로 열린 제2회 축제도 총지휘했다. 이번 축제 땐 ‘월이예능선발대회’가 열렸는데, 그 축하무대로 단막 <1인극 월이>의 작가로서 변함없이 나도 참여했다. 제1회 때 역시 <창작무 월이춤>의 작가 명패를 달고 출발 대열에 함께 발을 맞췄었다.
나는 사실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활성화 사전지원 작품으로 선정된 극단예우(박병모 대표 지난달 중순 별세)의 <간사지>(연출 황남진)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에서 공연한 바 있다. 친구인 고(故) 강태기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었는데, 오랜만에 사실주의 연극이 나왔다고 온갖 매스컴이 떠들썩하던 기억이 어제인 양 새롭다.
간사지 속싯개는 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거류산자락 거산리(巨山里) 앞바다이자 월이의 지도 변경으로 이순신장군의 당항포 승전고를 울리게 한 그 진원지다. 그래서 나는 간사지 연극에서 ‘월이제(月伊祭)’라는 극중 지역축제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춤추는 장면을 관객들에게 일찌감치 뽐냈음을 밝힌다.
어쩜 춤에는 문외한이면서도 월이춤을 고성농요 내지는 고성오광대와 연결시켜 잘 버무리면 고성 춤의 원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끙끙댔었다. 그런데 극중 월이제와 실제 현실 속의 월이제와의 만남이라니, 상상과 현실의 경계선에 우뚝 선 기분이었다.
솔직히 극작가로서 월이제의 <월이춤> 대본을 의뢰받고 조금은 살짝 혼돈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연극 <간사지>에서 다뤘던 실제와 구전(口傳) 월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이제 다시 극중 춤이 아니라 당당하게 독립된 창작무 <월이춤>으로 고향을 찾는다 생각하니 감회가 남달랐었다고나 할까? 그야 어쨌든 월이가 지역 문화상품으로 자리매김하며 거듭나는데 도움이 됐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 점에서도 이번 행사의 노시아 모노드라마(사진, 배우를 중심으로 좌우 연출과 작가) 공연은 월이를 가꾸고 꽃피우는 밑거름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해내지 않았을까? 지금은 비록 맛보기 짧은 콩트극이지만 언젠가 본격적인 정통 장막극이나 뮤지컬로 발돋움하여 예술과 영혼이 타오르는 무대 혼 불로 관객을 만나리라 본다. 마산과 서울을 활동무대로 왕성한 열정의 비지땀을 흘린 전국구 최성봉 연출과 혼자서 기량을 맘껏 떨치며 무대를 꽉 채운 노배우가 받은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나는 고향에 온 김에 가까운 통영 누님을 병문안하고, 마산에 가서 기차를 탔다. 대구에서 버스를 바꿔 타고 안동 친구 집에 가서 일박, 아침 일찍 강릉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영주를 거쳐 태백산맥의 허리를 관통하는 차창너머 절정인 가을단풍은 동해까지 계속되었다. 동해부터는 푸른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강릉까지 달렸다가, 서울행 KTX로 마감했다. 내가 혼자서 일부러 이 코스를 택한 것은 이순신장군이나 의기 월이 등 호국선열들이 지켜낸 우리네 땅 금수강산을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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