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김성수의 양주문화기행 ‘군사 요충지 대모산성’
책 소개/ 김성수의 양주문화기행 ‘군사 요충지 대모산성’
양주에서 15대째 살아가고 있는 김성수 전 국회의원이 ‘양주문화 기행1편’에 이어 최근 ‘양주문화 기행2편’의 탈고를 앞두고 있어 지역사회는 물론 출판계에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에 출간 되는 양주기행2는 ‘서울도 양주 안에 있었다고’를 제1부에서 다루고, 제2부에서는 ‘양주의 명산 들’ 제3부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양주 지명이야기’ 제4부는 ‘양주의 전설’ 제5부에는 ‘조선500년 속의 양주’가 소개된다.
김 전의원은 서언에서 ‘산이 높으면 물맛이 깊고, 물맛이 좋으면 사람이 건강하다’며 양주가 풍수적으로 명당이라며, 양주기행2는 단순히 자료에 근거한 역사 문화적 이야기가 아닌 고향을 사랑하는 양주의 토박이로써 애정을 담았고, 향후 다가올 세대에게 양주는 양주 사람에게 무엇인가의 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에 취재기자가 맛 베기라도 한 꼭지 소개를 부탁하니 김 의원은 수많은 양주의 보물 중 ‘대모산성’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양주 유양동에서 98번 도로를 타고 백석읍 방성리로 넘어가는 좌측에 높이 212.9m의 나지막한 산이 있는데 이곳에 ‘대모산성’이 있습니다. 데뫼식 산성으로 백제 근초고왕 때 쌓여진 성으로 알려졌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이전에 만들어진 성이라 추측합니다. 이유는 문헌에 백제초기에 쌍현성이 나타나는데 지정학적으로 양주 어둔리에서 복지리로 넘어오는 고개와 유향리에서 방성리로 향하는 고개 사이의 이 성이 대략 이곳(쌍현성)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이 성은 비록 나지막하지만 정면으로 수락산이 보이고 천보산과 국도3호선 경계가 시원하게 보이며 배후지에는 군량미 조달이 용이한 광적, 백석의 넓은 벌판이 있기 때문에 군사요충지로 중요합니다. 특히 삼국시대에는 이 성(城)을 차지하는 세력이 한반도 내 가장 강한 나라였습니다. 고구려가 이 성을 차지 할 때 이름은 ‘대모산성’이라고 고구려식 이름이 붙였고, 이 성을 중심으로 불곡산, 천보산, 도락산 등에 수많은 고구려 보루성이 쌓아졌다고 추측됩니다." 이어 김 전 의원은 "신라 진흥왕은 이 성을 차지하며 통일의 기틀을 다졌고, 676년 나당 전쟁 때 당나라군을 최후로 물리친 매초성 전투에서 대모산성이 본부로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추정 됩니다. 그 후 통일신라시대 때 이름은 ‘목판산성’이라 불렸고, 조선시대에는 양주 지명을 딴 ‘양주산성’으로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7차례 발굴로 백제,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골고루 출토되었고 이를 미루어 보아 오랫동안 전략적 요충지였고, 지금도 산성 인근에 26사단이 자리하고 있어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전략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모산성은 쌍현성, 대모산성, 목판산성, 양주산성 등 지배자와 시대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며 한 나라의 최후의 보루로 흥망성쇠를 목도한 성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을 양주지역의 호국교육의 산실로 이를 지키고 가꾸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것이야말로 애향이고 애국의 길"이라고 역설했다.
현재 김 전국회의원은 구순 노모를 모시고 15대 째 내려오는 집에서 살고 있으며,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업가와 대학교수를 거쳐 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현재는 대한민국헌정회 국토지명연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성주 기자
|
|
[ Copyrights © 2010 북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