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무슨 일을 하며 살았을까?(1)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무슨 일을 하며 살았을까?(1)
‘곡비’ ‘매품팔이’ ‘조방꾼’ ‘추노객’
조선시대 백성들은 매일 매일 새로운 역사를 써가며 500여 년 동안 조선시대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었다. 오백여년 동안 우리 선조들은 무슨 일을 하며 살아 왔을까? 농민, 어민, 상인과 무역상, 장터를 떠도는 보부상, 주막에서 사내에게 술과 안주를 파는 주모 등 우리가 떠 올리는 직업군도 있지만 우리 기억 속에 사라지거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직업군도 있었다. 이에 사라진 직업을 소개하므로 당시 민중들의 삶을 유추해보고자 3번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곡비’>
곡비라는 직업은 ‘슬픔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통곡소리가 있고, 업고로 상가의 수준을 평가했다. 만약 통곡 소리가 없거나 적으면 비난의 화살이 상주에게 돌아가므로 울어 줄 사람을 사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 왕실에서는 장례식뿐만 아니라 왕릉을 옮길 때도 곡비를 썼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이런 풍습은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 왔다. 고구려 시대 장례식은 북을 치고 풍악을 울렸는데, 성리학이 전파된 고려시대부터 곡을 하기 시작했고 이는 조선시대 일반사회에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매품팔이’>
‘매품팔이’는 남의 죄 값을 대신해 매를 맞아 주는 직업이다. 판소리 흥부가에 보면 지지리도 가난한 흥부에게 관청 이방이 매력적인 일거리를 제안한다. 양반 대신 매를 맞으면 삼십냥을 준다는 것이다. 흥부는 제안을 승락하고 선금으로 다섯냥을 받아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이에 흥부아내는 굶어 허약한 몸으로 매를 맞으면 죽는다며 만류하지만 흥부는 관청으로 향한다. 현재에도 비슷한 직업으로 바지사장이라는 것이 있다. 회사 운영실권이 없으면서 법적 책임을 질 때 대신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조방(助幇)꾼’>
조선에 괜찮은 직업 중 ‘조방꾼’이 있다. 기생의 ‘매니저’ 쯤 되는 직업이다. 처음 조방꾼을 기생의 남편이라는 뜻인 ‘기부’라고 불렀다. 이들은 기생들의 뒤를 봐주고 술꾼 때문에 생기는 문제나 기방 영업에서 생기는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역할을 했다. 대개 공직자들인 대정별감, 포도청의 군관, 의금부 나장, 승정원 사령 등이 투잡 성격으로 맡았다. 이들이 조방꾼이 된 것은 일에 비해 벌이가 시원치 않고, 언제 내칠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수입이 좋아지자 조선 후기에는 기생에 얹혀서 먹고사는 기둥서방이 되기도 하고, 손님과 연결시켜주는 중계인 역할까지 영역을 넓혔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상 공노비인 기생들이 신분상 해방 되자 차츰 없어졌지만 유사 직업(신조방꾼)이 유흥가에서 활동 중이다.
<‘추노객’>
얼마 전 인기 드라마 ‘추노’에 ‘추노객’이 등장한다. 이들은 도망간 노비를 잡아주고 현상금으로 생활하는 직업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재산목록 1호는 노비들이다. 노비는 국가에 속한 공노비와 개인이 소유한 사노비가 있다. 사노비는 주인과 함께 사는 솔거노비와 따로 사는 외거노비로 분류 된다. 조선시대 내내 노비 탈주는 커다란 사회문제가 됐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는 더욱 심해졌다. 양반들은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탈주한 노비 찾아야 했다. 방법은 관아에 호소 할 수 있으나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추노객’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이들에게 성공사례를 지불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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