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
의정부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는 동안 일본 군인들의 성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집단적 성행위 장소인 이른바 군대 ‘위안소’를 제도화하고, 식민지 및 점령지 출신의 여성들을 전선으로 보내어 성노예 역할을 강요했는데, 이를 일본사람들 용어로는 ‘위안부’라고 불렀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여성들의 의사에 관계없이 강제로 끌고 가거나 혹은 ‘일자리를 소개시켜 준다’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라고 모집한 뒤 태평양 섬 등지의 외딴 곳에 성노예로 보냈다.
당시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구타, 가해는 늘 있는 일이었고 칼 같은 흉기로 몸을 긋거나 담뱃불로 지지는 등 엄청난 고문도 이루어졌다. 매일 수십 명의 남자들을 상대하기에 성병에 걸리거나 임신 후 강제로 중절수술을 받고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식량 배급도 극도로 적어 영양실조도 많았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서 끌려간 17세 이상 30세 이하의 처녀들 숫자는 정확한 통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약 20~30만명 정도라고 한다. 아직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보면 12세 어린아이 까지도 강제로 잡아 보냈다고 하는데 정말 일본의 잔인함이 무서울 지경이다.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 여자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의 여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식민지배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여성들도 위안부로 끌고 갔었다. 1992년 1월 8일 첫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일본의 사과를 위한 수요 집회가 시작된 지 20년이 흐른 2011년 11월 14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작가는 김운성-김서경 부부로 구성은 의자에 앉아 단발머리와 한복 차림을 하고 두 손 움켜쥔 채 일본대사관을 응시하는 높이 130cm 소녀상이다, 그리고 왼편에는 소녀가 앉아 있는 의자와 같은 사이즈의 의자가 있다. 빈 의자는 소녀와 함께 위안부 문제를 되새기는 체험 공간을 위한 자리다.
현재 이런 ‘평화의 소녀상’은 서울을 비롯해 전국 30여개 지자체에서 소녀상을 새웠거나 건립을 준비 중이다. 의정부는 지난 2015년 11월 7일 의정부역 동부광장 앞 평화공원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초를 겪은 할머니들을 위해 '의정부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의정부 인근 21개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의정부평화비건립추진위원회‘는 그동안 토크 콘서트와 모금활동을 통해 4000여만원의 성금을 모아 소녀상을 세웠다.
얼마 전 의정부의 한 시민은 이 소녀상 앞에서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아픈 역사인데, 그래도 의정부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세워주어서 역사를 다시금 알고, 청소년들에게도 건강한 의식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게 되었네요. 아픔 없는 평화만이 공존하는 곳에서 하루속히 살고 싶습니다. 평화를 바라며...”라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런 평화의 소녀상은 미국에 2곳, 캐나다와 호주에 각 1곳, 중국에 1곳 등 다섯 군데에 있다. 김창현 시인은 이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시를 지었다.
<늙어 핀 꽃>
봄은 왔건만 틔우지못한 싹들은/
흙 위에서 스러지고/
여린 고사리는 짖밟히었다
차마 꿈조차 꾸어 보지도 못한/
꽃봉오리 소녀는/
들개의 더러운 굴속에 물려가/
검은뱀과 붉은뱀에게 무명 저고리속의/
파릇한 젖가슴을 유린당하고/
영혼의 자유마저도 구속당했다
피우지도 못하고 시들은 꽃망울/
멈추어버린 기억은/
고향집의 뒤뜰/
복사꽃 나무 가지위에 걸쳐두고/
참으로 먼길을
<중략>
꽃잎들은 하나둘 떨어지고/
얼마 남지 않은 황혼녘/
차마 다 말할 수 없었던/
그날의 얘기들/
치욕스런 그 만행들을..
늦었지만 진하디 진한 향기로/
세상에 전한/
가슴이 저린 이야기들/
가슴을 쥐어뜯는 통한의 역사를/
세상이 잊을까 두려워 눈을 감을 수 없다
(김창현의 시, ‘늙어 핀 꽃’ ˑ 부분)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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