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의 중심 ‘양주관아지’ 이야기
옛 양주문화권 순례2 경기북부의 중심 ‘양주관아지’ 이야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행정구역개편과 관련하여 양주시 유향리에 있는 ‘양주관아지(楊州官衙地)’가 옛 양주문화권 중심축으로 지역사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양주는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로 정치, 경제, 교통, 국방에 중요지역으로 태조 이성계는 한양군으로 칭하던 것을 견주(見州)로 승격 시키며, 치소를 동촌 대동리(성동구 아차산 인근)에서 양주시 고읍동으로 옮겼고, 세조 12년(1466년)에는 견주를 다시 양주목(牧)으로 승격하면서, 주(州)로는 파주(坡州), 군(郡)으로는 고양(高陽), 현(縣)으로는 영평(永平), 포천(抱川) 적성(積城) 교하(交河), 가평(加平)을 거느리게 했고, 치소영역(현재의 행정구역)도 의정부, 양주, 동두천, 연천, 포천, 고양, 파주, 서울동북부, 구리, 남양주에 이른 조선시대 최대 행정구역이었다.
현재의 양주관아지가 자리 잡게 된 것은 중종1년(1506년)으로 견주 관아지인 양주시 고읍동에서 이전했고, 양주군 시둔면(현재의 의정부 1동)으로 양주군청을 옮기기까지 양주관아지는 417년간 양주목의 행정중심이었다.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된 양주관아지는 6·25때 소실되었으나 양주시가 복원하고 있다. 현재 복원한 관아는 목사의 정청이었던 매학당으로 목사가 정무를 보던 외동헌과 가족이 생활하던 내동헌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규모는 20여 칸 이었다.
또 동헌의 오른편에는 흩어져 있던 양주목사들의 송덕비들을 모아놓았는데 총 18기중, 17기는 송덕비이고 나머지 1기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유허비이다. 부근에 양주목사가 휴식을 하던 금화정과 유양폭포가 있다. 현예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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