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산정 표지석 앞에서
백범사에서
노강서원에서 역사공부
중랑천횡단
박세당선생 종가집 사랑채
7호선 장암역에서
청풍정앞에서
중량천 길을 최대한 활용해, 의정부 평화역사와 접목 되어야
지난 3월 26일 새봄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오후2시, 7호선 출발역인 의정부장암역 앞에 18명의 올레길 탐사요원들이 모였다. 오늘의 탐사코스는 평화올레2길(지도참조)로 장암 수락동에서 조선조 실학의 거두인 서게 박세당의 숨결을 느끼고,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역사적 만남의 장소인 호원동 전좌마을을 지나 김구 선생 유지가 서려있는 도봉산 기슭에 위치한 회룡계곡을 연결하는 9.1Km에 4시간 코스다.
#1 궤산정
장암역에서 수락산 등산로를 따라 800m쯤 올라가니 길옆에 궤산정(?山亭)은 없고 궤산정이 있던 곳이라는 표시석이 우리를 맞이했다. 수락산 계곡에 머릿돌만 남은 궤산정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여 3백20여년전 실학의 거두인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선생이 이곳에 낙향하여 반남 박씨의 세거지로 삼고 제자를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2 청풍정
궤산정에서 100m 오르자 청풍정의 주춧돌이 보였다. 서계 선생이 매월당 김시습을 추모하기 위하여 충렬사를 짓고, 그 앞에 청풍정을 세워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던 곳으로 전해지고, 청풍정 냇가 건너 계곡바위엔 서계선생의 친필 <수락동천(水落洞天)>의 글이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노강서원
청풍정에서 수락산 계곡으로 150여m 오르자 산기슭에 작지만 단아한 노강서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3채의 목조건물이 들어선 노강서원은 박세당선생의 차남인 박태보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 숙종때 인현왕후 폐위 반대에 앞장서다 유배 길에 장독(매로 인한)으로 노량진에서 죽었고, 5년 후 그의 진실이 알려지자 그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 노량진에 노강서원을 세웠으나 6,25때 병화로 소실되자, 그의 후손들이 1969년에 의정부 장암동에 개축했다. 특히 이곳은 의정부시가 파견한 노강서원 전문해설사 이진옥씨로 부터 역사를 공부하는 맛을 볼 수 있는 기쁨이 있다.
#사랑채
노강서원에서 다시 내려와 수락산 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박세당 선생의 종가집을 방문했다. 이곳에는 사랑채가 보존되어 있었고, 사랑채 앞에는 500여년 수령의 나무와 의정부 제1경이라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도봉산 전경이 펼쳐졌다. 이곳에는 교장선생님을 역임한 장길수 해설사가 이곳에 역사를 소개 받았다.
#중량천 횡단
사랑채에서 동부순환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7호선 장암기지창 끼고 중량천에 들어섰고, 호원검문소 방향을 지나 호원중학교 앞에서 호원 초등학교에 이르는 4Km를 걸어 전좌마을에 도착 했다.
#전좌마을(殿座)
태조 이성계가 왕자의 난 이후 함흥에 칩거하다 무학대사의 간곡한 청으로 한양 환궁 길에 올랐다. 이 소식을 접한 태종(이방언)은 아버지를 맞이하기 위해 의정부 호원동(호원초등학교 근처로 추정)까지 나와 마주앉았다하여 전좌마을이 됐다.
#백범사(白凡祠)
전좌마을에서 백범사까지는 1.2Km 산길로 가파르다. 이곳은 현대 한국사의 거인(巨人)인 백범 선생이 망명(亡命)전 이곳으로 피신했고 해방 후 자주 들른 곳이다. 1948년 가을, 선생께서 이곳에 오시자 당시 언론인 남상도외 7인이 <石窟庵佛戊子仲秋遊此白凡金九>라는 친필을 받게 된다. 그들은 이를 오래 기념코자 이듬해 봄부터 친필명문을 조각하기로 마음먹었다. 1949년 6월26일 오후3시에 이곳 석굴암에서 백범 선생을 모시고 명문완공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그날 선생은 참변을 당해 참석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곳이다.
#평가회의
백범사를 끝으로 회룡역 근처에 소재한 레스토랑 ‘사월에’에서 저녁식사를 겸한 평가회를 했다. 이번 올레길 개척단은 기존 중량천 길을 최대한 활용하고 의정부 역사를 연결하는 평화올레길로 의정부올레길를 통해 사통팔달하게 만들어야 효율성을 제고 할 수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4월 개척에는 부용천을 따라 정문부와 송산사지, 신숙지를 연결하는 코스를 답사키로 했다. 이번 개척단은 통일문화재단(이사장/서기원)이 주최하고 북경기신문이 후원했다.
정리/유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