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나온답니까?
경칩(驚蟄)이 지났으니 이제 개구리가 막 튀어나올 것이다. 식물들이 새순을 틔우거나 꽃망울을 터뜨리듯이 땅 속의 파충류들도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낼 것이다. 지독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은 동물들의 구제역 때문에 더욱 길고 혹독했다. 생매장 당하는 가축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다행이 날씨가 풀리면서 구제역의 끝도 보인다는 실낱같이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살처분 당하는 소들의 순한 눈망울을 생각하면서 인도에서 태어나지 그랬느냐고, 실없는 혼자소리를 해봤다. 인도를 지구상에서 소의 천국이라고 하지만, 실은 먹이를 찾아서 도시의 뒷골목 쓰레기더미를 파헤치고 떠돌아다니는 바싹 마른 몸집의 소들을 보면 그 짝퉁 같은 ‘천국론’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델리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과 소떼가 뒤얽혀서 피난길처럼 북적대며 가던 오래 전의 기이한 풍경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아무튼 지난 겨울 동안 구제역 뉴스로 온 나라가 암울할 때 나는 암소의 살해행위를 금한다는 ‘암소권리헌장’이 국법으로 제정된 나라 인도를 자꾸 생각하게 됐다.
그 나라가 소를 숭배한다고 이상히 여길 것도 없겠다. 우리에게도 소는 매우 귀중한 존재였다. ‘우골탑’이라는 공적을 쌓으며 헌신했기에 한 가문의 명예를 얻기까지는 소들의 몫도 분명히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다. 지금 우리사회의 중진 인사들 중에서도 대다수가 집안의 소 몇 마리는 날리고 대학을 마친 ‘소에게 빚진 자’들이다. 인도나 우리나라 모두 소에게서 취할 수 있는 경제적인 논리 안에서라면 별반 다를 게 없는 동반 국가이다.
“여러분이 진짜 숭배 받는 암소를 보고 싶다면, 밖에 나가서 여러분의 자가용 승용차를 바라보면 될 것”이라고 일침을 가한 사람이 있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헤리스는 현대문명의 이율배반적인 허울을 탐색하고 있다. 『문화의 수수께끼』는 제목 그대로 이해할 수도 없으며 이해안 할 수도 없는, 불가해한 세계 각국의 문화현상들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다시 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동식물을 숭배했던 토테미즘은 어느 문화권 나라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한 원시적 종교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인도 사람들이 우상(牛上)을 숭배하는 것은 그 나라의 민속종교인 힌두교에서 연유한 것이지만 마빈 헤리스는 그 나라 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생태학적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즉 암소가 지니고 있는 인간에게 이기적인 가치를 ‘숭배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트랙터는 공장에서 생산되지만 수소는 암소가 낳는다. 암소를 소유한 농부는 수소를 생산해낼 공장을 가진 셈이다.” 암소숭배와 관계없이 자연농업의 시스템 때문에 소를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또 미국에서 대규모의 기업농이 발달하면서 소농가가 몰락하게 된 경우를 예로 들면서 소와 인간 사이에 놓인 슬픈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아직도 소가 값비싼 농기구를 대체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아주 오랫동안 그래왔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소는 다만 우유와 고기를 제공하는 식자재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구제역 때문에 육류의 가격이 파동을 치고 있다는 언론의 호들갑스런 뉴스를 보면서 당장 고기 좀 안 먹는다고 죽나? 우리가 너무 고기를 밝힌 죄과로 이 참혹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단순한 상념에 빠졌었다. 축산업 농민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육류 소비가 날로 늘어나는 오늘날 불건강한 국민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도 균형적인 채식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으니 말이다. 아, 우울한 ‘소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두꺼비든 청개구리든 그들이 막 땅 속에서 튀어나온다니까 아직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지만, 기분만은 매우 스프링(spring)!이다. 그런데 구제역 때문에 저 아래 남쪽 지방에서는 봄맞이축제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는 애꿎은 소식도 들려온다. 산수유와 매화가 해마다 환하게 꽃등불을 켠 듯 우리 모두에게 마음의 고향같이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그 곳이었다. 재앙의 여파가 결국은 거기까지 미치고 말았다는, 이 허무한 상실감이라니. 내가 너무 과민한 건가. 혹시 개구리들이 땅 속의 살 썩는 악취에 숨이 막혀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 걱정도 이젠 내 취미생활인가 보다. 우리 어머니처럼.
글/황영경(신흥대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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