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同行) ‘2011 새로운 시작'
동행(同行) ‘2011 새로운 시작'
동행(同行) ‘2011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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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同行) ‘2011 새로운 시작'
사진설명(위부터) 1)철도종단점도착 2)의정부역 출발 3)걷는 모습 4)양주청담천의 오리떼 5)3.8도선통과 6)한탄강 다리를 지나는 경원선 7)연천벌 석양 솟대 8)연천에 배달된 북경기신문 북한으로도 배달되는 날을 기대 9)경원선 남측구간 공사 모습
통일문화재단(이사장/서기원)은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프로그램으로 ‘동행(同行) 2011 새로운 시작’을 기획 추진했다. 지난 12월 30일부터 1월 1일까지 2박3일간 의정부 소재 북경기신문사 본사를 출발, 철도 종단점인 연천 신탄리까지 도보 행진하면서 한해를 반성하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각오와 다짐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첫째날(30일)/ 평화의 순례(의정부 - 동두천까지)
▶오전11시, ‘북경기신문사와 통일문화재단 2010년 종무식’을 서기원 이사장의 기도로 마치고 2박3일 장정 준비에 나섰다. 한 낮이었지만 영하의 추위는 사람들을 움츠리게 했다. 내 건강이 과연 스스로의 미션을 수행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으나 발목에 힘을 주며 신문사를 나섰다.
▶오전12시, 우리민족의 희망인 경원선(線) 출발지 의정부역에서 출발을 시도했다. 우리가 의정부역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남북을 잇는 두 철도 중 경의선은 연결 되어 있으나 경원선은 끊긴 채로 남아있고, 남북이 최정예부대와 화력이 대치하는 곳으로 이곳의 연결이 평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특히 금강산가는 열차와 북한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시발지로 만들고자하는 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1시30분 의정부를 벗어난 곳에 정감이 넘치는 민들레산채정식 집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고읍신도시에 들어섰다. 7호선연장 문제가 이 지역 핫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곳을 지난 독바위를 거쳐 덕정동 초입에 도착 했다.
▶오후4시30분 우리는 도로보다는 눈 덮인 청담천 따라 동두천으로 가기로 하고 내려가 보니 청둥오리로 보이는 오리가족이 여기 저기 많이 보여 겨울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한 중년 남자가 체조선수처럼 평행봉에 올랐다. 그는 주공에 사는 유기용(57세)씨로 새해에는 가족건강을 꼽았다.
▶오후6시30분 첨담천에서 나온 우리는 3번 국도를 따라 동두천을 통과했다. 어두운 저녁 차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도보 행군은 위험했지만 1차 도찯지인 동두천에 안착했다.
▶오후7시 동두천지역 여성지도자와 저녁을 함께하며 평화의 담론과 새해 계획을 나눴다.
둘째날(31일)/ 희망의 순례(동두천-연천까지)
▶오전9시30분 한파주의보가 발령, 동두천 진미옥에서 설렁탕으로 조찬을 하고, 동두천 영상단지가 계획 되었던 안흥동 다리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단지를 조성하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던 방선배의 생각이 났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모여 세계적인 영화공장을 만들기를 기원하며 신천변의 도로를 따라 연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1시30분 동두천 경계선에서 구제역 방역 작업하는 박성용(고보전산과), 정락범(26사단 하사)씨는 ‘새해에는 구제역이 잡히기를 기원했다’
▶오후1시30분 초성리역 근처에 도착하자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핵심은 화장장 들어오지 말라와 1호선 연천 연장시 초성리역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근처 매운탕집에 들러 허기를 채우며 자초지정을 들었다. 초성리 근처에 탄약고가 있는데 이것을 감안해 건설 할 경우 200억원이 추가로 들어가 초성리역을 폐지하자는 것을 주민이 반발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오후2시30분 드디어 38도선 도착. 1951년 5월 28일 미군, 그리스군, 태국군이 연합으로 38선을 돌파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장렬히 산화한 연합군을 추모한다고 쓰여 있다.
▶오후3시30분 우리는 한탄강을 건너 연천군의 최대시가지 전곡을 우회하면서 연천으로 계속 전진했다. 예전에는 전곡이 양주군 영근면이었으나 땅이 몹시 질어 진골이라 부르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연천군 전곡리가 됐다.
▶오후5시 연천벌판 얼굴은 감각이 없었다. 빤히 보이는 곳이지만 7Km는 족히 되어 보인다. 이곳에서 구제역 방제를 위해 헌신하는 김광철 도의원, 이종만 군의원, 2명의 여성공무원을 만났다.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오후6시 연천시내 입구 도착. 계속 걸으면 걸을 수 있지만 쉬었다 다시 걸으려면 괘나 힘이 들었다. ▶오후7시 전곡으로 나와 연천지역 지도자들과 평화에 대한 담론과 함께 새해소망을 그려보면서 두 번째 날 계획을 마무리 졌다.
셋째날(1월 1일)/ 동행을 위한 새로운 시작
▶8시30분 우리는 대광리 시내 24시간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대광리역에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대광리역은 1912년 10월 문을 열었다, 당시에는 봄철 나물 캐는 사람과 군인이 주 고객이었으나 요즘에는 보양식당이 인기를 끌면서 인근 관광객들이 몰린다는 것이다. 아직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눈 덮은 소로를 따라 목적지로 계속 향했다.
▶10시30분 우리의 목적지인 신탄리 초입에 들어섰다. 천근 만근하던 다리가 슬슬 풀리는 것 같았다. 신탄(新炭)이란 옛 부터 고대산의 풍부한 목재로 숯을 만들었다고 해 얻어진 지명이다. 이곳에 철도의 종단점이 있다.
▶11시30분 우리는 통일을 염원하고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를 깃들기를 바라며 이곳이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남북교류의 장(場)이 되기를 기원하는 예식을 거행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순례를 결산하면, 2박3일 수많은 시간을 걸으면서 자신에 대한 지난날을 회고하고, 새로운 도전을 향한 의지를 불태운 소중한 시간이라고 자평 하면서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기를 기원했다.
정리/ 현성주, 유광식 기자, 사진/ 오용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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