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국민체육센터에서 개최된 귀환행사 모습
장진호 전투 참여 한 ‘고 박진호 일병 72년 만에 귀환’
6·25전쟁 당시 함경남도 일대에서 치러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고 박진호 일병이 72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귀환했다. 지난 19일 동두천시 국민체육센터에서 국가보훈처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주관으로 개최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가 엄숙한 가운데 거행됐다.
박 일병은 1950년 8월, 23살 나이로 입대한 뒤 미 7사단 31연대 소속(카투사)으로 참전해 같은 해 11월 장진호 전투에서 교전 중 전사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12월11일 치러진 전투로 미 10군단 예하 해병 1사단이 서부전선으로 진출하기 위해 장진호 북방으로 이동하던 중 중국군 9병단 예하 7개 사단에 포위된 뒤 장진호 계곡을 빠져나온 2주간의 철수 작전을 가르친다. 이 전투에서 미국과 중국 군대가 처음 맞붙었고, 유엔군 1만7천여명과 중국군 4만8천여명이 사망·실종 또는 부상을 당했다.
국가보훈처는 “고 박진호 일병의 유해는 북한 장진호 지역에서 발굴 후 미 국방부 전쟁 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 보관된 것을 과학의 발달로 고 박진호 일병의 신원이 확인됨에 따라,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귀환 행사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동두천시장, 동두천시의회의장, 6군단장, 28사단장, 동두천 보훈단체장 및 회원, 신한대 사이버드론봇군사학과 학생, 경민대 효충사관과 학생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현재 고인의 부모는 모두 생을 달리했고, 유가족으로는 8남매 중 두 명의 여동생과 한 명의 남동생이 생존해 있다. 고 박진호 일병의 남동생인 박진우(75세)씨는 “형님이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전쟁 중 북한에서 돌아가신 것에 억장이 무너졌는데, 유해를 찾아서 감개무량하다. 부모님이 계시는 선산(납골당)에 빨리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호국영웅 귀환식은 19일 정오 국립서울현충원을 출발한 고 박진호 일병의 유해는 군사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행사 장소인 동두천국민체육센터로 이동했고, 동두천시에서는 영웅의 유해가 운구되는 거리마다 태극기 가로기를 게양해 영웅의 귀환에 존경과 경의를 표했다.
고인의 유해가 도착하자,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직접 맞이했고, 유해를 제단까지 모신 후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이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유가족 대표에게 고 박진우 일병의 전사자 신원확인통지서를 전달했고,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했다. 특히, 호국영웅에 대한 명예선양의 의미를 담은 ‘호국영웅 귀환패’와 전사자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했다.
이와 관련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72년이라는 기나 긴 세월 동안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간직한 채 살아오신 유가족 분들께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는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분들의 명예선양과 예우에 만전을 기함으로써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이 구현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귀환 행사를 마치면 고 박진호 일병의 유해는 인근 선산 가족 납골당으로 봉송, 고인의 부모 곁에 안장됐다. 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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