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플러스/ 북한 영화
북한에서 영화는 강한호소력과 전파력이있는 장르로인식되어, 일찍부터 대중교양과 선전을 위한 중요한 분야로 주목받았다. 북한에서 영화는 인민들에게 당의정책과 방향을 알리고, 이를통해 공산주의적 인간형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의 하나이자, 주민들을 혁명화, 노동계급화, 공산주의화하기 위한 인민교양, 사회교육의 수단으로 평가하고 있다.
<영화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전이다>
속도전은 최대한 빠른시간 안에 수준 높은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다. 속도와 작품성을 잡는다는 것은 쉬운일이아니다. 속도전을 제대로하기 위해서는 ‘종자’를 잘잡아야한다. ‘종자’란 한마디로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 문제이자, 작품의 사상·예술적 핵심을 말한다. 정리하자면 당에서말하고자하는 핵심(종자)를 제대로 파악해서, 가장빠른 속도로 영화를만드는 것. 이것이 영화인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좋은 종자를잡기위해서는 사상교양과 현실인식이 있어야한다. 당면한 현실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하고, 당의입 장에서 문제에대한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해야한다. 영화인들에게 끊임없이 사상교양을하고, 당정책을 학습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북한에서 영화제작은 기획단계에서부터 국가의 엄격한 관리와 통제를 받는다>
북한의 영화인들은 모두 기관에 소속되어있다. 자유로운 배우나 감독은없다. 소속기관에서는 영화창작방향과 목표, 시나리오 집필, 영화촬영, 편집, 평가와 보급의 모든과정에서는 자체평가와 공식검열을 거쳐야 한다. 개인의 견해나 의견이 반영되거나 당정책과 맞지 않은 부분은 철저한 검열을통해 비판되고 수정된다. 그 결과 북한의 모든 영화는 현시대 당이 요구하는 정책이 반영된 영화들만 만들어 진다.
<북한의 영화창작은 1980년대가 전성기였다고 할수있다>
1980년대 이후 대내외적인 고립과 경제난 등으로 영화계는 크게 위축되었다. 2000년 이후 북한 영화는 선군정치를 주제로 한 영화, 실리 사회주의를 주제로 경제문제를 다룬 영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운데, 민족문제를 다룬 영화도 창작되었다.
<최근 예술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는 북한과 영국, 벨기에 3개국 합작으로 제작되었다>
전반적으로 경쾌하고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카메라의 기술적인 활용도 늘어났다. 전반적으로 밝고 부드러운톤을 바탕으로 긍정적이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였으며, 카메라를 활용한 장면연출이 많아지면서 볼거리도 다양해졌다. 주제 역시 2000년 초반에 집중적으로 선보였던 ‘실리사회주의’에서 인민 생활과 연결된 생활경제 주제가 늘어났다. ‘돈’으로 가면 자본주의고, ‘정’으로 가면 사회주의라는 가치와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김정은 체제 즈음하여 나타난 특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보급 교양산업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므로 당이 직접 관여한다>
영화는 특히 선전선동의 핵심매체로 인식하고, 국가에서 조직적으로 보급사업에 관여한다. 영화의 창작과 내용에 대한 검열은 주로 선전선동부를 통해 이루어지고, 영화의 보급은 문화성산하 <영화보급소>에서 주관한다. 영화보급 일꾼들을 동원하여 평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협동농장, 공장등 작업장이나 시민문화회관등에서 상영한다. 의무 상영영화의경우에는 모든 인민들이 의무적으로 보아야 할 뿐만아니라 영화내용을 생활화해야한다. 각 직장이나 단위별로 영화감상이나 ‘실효투쟁’을 통하여 ‘영화주인공 따라배우기 운동’을 전개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소련이나 중국과의 합작영화창작도 활발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크게 줄었다. 외국영화는 평양영화 축전기간이나 일요일에 볼 수 있는 만수대 텔레비전을 통해 제한적으로 접할 수 있다. 외국영화는 인기가 높은편이다. 북한경제가 다소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기에 영화제작은 1980년 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북한영화는 실리사회주의를주제로 경제문제와 선군을주제로 한 영화들이 창작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운데 <피묻은 략패>나 <우리의 향기>와 같은 민족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도 창작되었다. 김정은시대 북한영화는 기법이나 화면구성에서 상당히 부드러워지고, 눈요기 거리도 많아졌다.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는 평양교예단의 배우를 캐스팅하여 교예장면을 보여주는 등 세계적인 시선을 의식한 영화로 제작하였다.
<영화시설>
북한에서 극장은 예술공연이나 집회에 사용할 수 있는 종합시설을 의미하며, 영화는 영화관에서 상영한다. 영화의 보급을 위해서 지방이나 산간 오지에 간이 영상시설을 설치하거나 이동영사대 등을 활용한다. 소규모 영화시설을 포함하여 영화관은 약 1천여 개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영화관 외에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서 시, 군 문화회관,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소년회관, 도문화회관(선전대), 이동 영사대 등이 있지만 최근에는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서 지방까지 영화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주요 영화시설로는 국제영화회관, 대동문영화관, 락원영화관, 개선영화관 등이있다. 평양에 락원대동문영화관 등 8개의 영화관과 청진, 신의주 등 주요 도시에는 3-4개, 지방에는 1개소 정도의 영화관이 있는데 명절휴일이나공휴일에만 영화를 상영한다. 영화관 규모는 평균 5백석 정도로 내부에 휴게실이나 매점은 거의 없다.
<영화인의 지위>
북한에서 영화인들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 영화종사자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대우는 ‘인민칭호’이다. 인민 칭호에는 인민배우, 인민예술가가 있다. 인민배우는 연기자에게 인민예술가는 연기자 이외에게 수여되는 칭호이다. 인민칭호 다음으로는 공훈칭호로 공훈배우, 공훈예술인이있다. 인민 칭호나 공훈 칭호는 영화뿐만아니라 예술분야를 포함하여 사회적으로 해당분야에서 공을 세운 인물들에게 수여되는 칭호이다. 인민칭호의 경우에는 부장급(장관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는다. 북한의 모든 예술인들은 등급제로 되어있다. 예술분야의 경우 1급부터 9급까지 나누어져 있다. 2-3년마다 평가를 받아서 등급이 올라가므로 1급 예술인이 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공훈 칭호나 인민 칭호는 1급보다 높기 때문에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아니다. 영화계에서 오랬동안 종사하고, 공로를 인정받은 예술인들만이 받을 수 있다.
<영화인력 양성은?>
영화인 양성 전문교육기관의 핵심기관은 평양연극영화대학이다. 평양연극영화대학은 1953년 11월 1일에 종합예술학교로출발하였다가 1959년에 평양연극영화대학으로 독립하였다. 연극분야의 중요성이 감소되면서 1972년 평양영화대학으로 개편하였다가 1988년부터 다시평양연극영화대학으로개명하였다. 평양연극영화대학은 영화분야의 전문인력외에도 방송원, 사진촬영가 등 영화매체분야의 전문종사자들을 양성한다. 평양연극영화대학은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이있다. 학부는 창작부문이나 전문실무인력을 양성하는 영화창작학부, 배우, 방송원을 양성하는 영화배우학부, 영화부문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영화기술학부, 기초교육학부가있다. 학제는 평양연극영화대학이외 평양예술대학(4년), 2.16예술전문학교(6년), 7·18고등예술전문학교(6년) 등이 있으며, 영화배우양성만을 전담하는 기관으로 ‘배우양성소’를 두고 있다. 또 전문영화문학통신원강습이라는 특별과정을 통하여 일종의 아마추어 작가나 시나리오 작가지망생을 발굴, 양성하기도 한다.(통일부 북한자료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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