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갈퉁의 평화론이 전하는 메시지
지난 2월 21일 <한겨레>에 실린 저의 요한 갈퉁 추도사로 대중 강연에 이어 대학신문 인터뷰 요청도 받았습니다. 이미 알려드렸듯, 내일 4월 2일부터 7월 30일까지 부산에서 “평화연구와 평화운동”에 관해 5회 강연하기로 했는데, 며칠 전엔 서울대학교 신문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더군요. 학부 기자가 갈퉁 교수의 평화학에 관심 갖는 것에 감동 받아 적극 응했지요. 제가 얘기한 것과 달리 기사가 만들어져 좀 유감스럽습니다만, 갈퉁 교수의 평화연구와 평화운동에 관해 <한겨레> 추도사에 싣지 않은 내용이 있기에 아래 소개합니다.
현대 평화학의 귄위자이자 평화 운동가였던 요한 갈퉁이 지난 2월 17일 별세했다. 갈퉁은 모든 폭력이 없는 이상적 평화를 꿈꾸며, 이를 전 세계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남북한을 여러 차례 직접 방문하며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해 노력해 우리나라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갈퉁은 1970년대 초故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택연금을 당했을 당시 집으로 찾아가 그를 응원했고, 1998년에는 김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나 한반도 평화에 관련해 조언하는 등 남한의 평화로운 대북 정책을 지지했다. 갈퉁은 또한 90년대 후반 남북한의 평화학자를 노르웨이로 초청해 남북한 평화 회담을 추진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가 바라는 평화는 무엇이었으며, 그의 사상이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무엇인가.
<평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평화학의 아버지>
1930년 노르웨이에서 출생한 요한 갈퉁은 현대 평화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회학자다. 갈퉁은 전쟁의 부재를 넘어, 모든 이가 존엄한 삶을 누리는 궁극적인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현대 평화학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동기 교수(강원대 평화학과)는 “갈퉁은 평화학의 선구자로서 평화가 규범이나 정치를 넘어 학문 영역으로 자리 잡는 데 이바지했고, 대안적 평화 구상과 실천의 토대를 마련했다”라고 평가했다.
갈퉁은 전쟁과 냉전의 폭력을 직접 경험했고, 냉전 완화 이후에는 전쟁이라는 가시적 갈등뿐만 아니라 이념 대립과 빈부 격차 등의 비가시적인 갈등도 대두되는 것을 목격했다. 연세대 교양교육연구소 이찬수 연구원은 “갈퉁은 어린 시절 노르웨이가 독일 나치에 점령당하면서 전쟁이 낳은 폭력의 실상을 겪었고, 청년이 된 뒤에는 병역을 거부해 수감생활을 하는 등 국가의 폭력에 저항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재봉 명예교수(원광대 교양교육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단순히 전쟁의 발발을 막는 것을 넘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 빈부 격차로 인한 갈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됐다”라고 설명했다. 갈퉁의 평화학은 이처럼 그의 삶에서 경험한 다양한 폭력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이재봉 명예교수는 “갈퉁은 갈퉁이 살아가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가시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비가시적인 폭력을 조명함으로써 더 폭넓은 평화를 요구하는 현대 평화학의 기틀을 구상했다”라고 말했다.
<적극적 평화를 꿈꾸다>
갈퉁은 어떻게 평화의 저변을 넓혔을까. 갈퉁은 폭력 개념에 대한 인식을 확장할 것을 요구하며 ‘폭력의 트라이앵글’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폭력은 전쟁과 같이 물리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직접적 폭력뿐만 아니라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이라는 새로운 폭력 개념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재봉 명예교수는 “구조적 폭력은 제도나 법 등 사회 구조에 내재한 비가시적인 폭력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동기 교수는 “예컨대 이런 관점에서는 빈곤으로 인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도 구조적 폭력”이라고 부연했다. 나아가 문화적 폭력은 언어나 사상 등 문화 영역 내에서 혐오나 차별을 조장하는 폭력이다. 이찬수 연구원은 “문화적 폭력은 다른 종류의 폭력을 자연스럽게 느낄 정도로 정당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라고 설명했다. 통일연구원 서보혁 연구위원은 “갈퉁은 직접적 폭력은 제도적, 문화적 측면의 간접적 폭력 없이는 성립 불가능하다고 봤다”라며 “그는 폭력의 세 꼭지가 악순환 관계를 형성하며 억압과 차별을 일상화한다고 설명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모든 형태의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갈퉁은 직접적 폭력이 없는 상태인 ‘소극적 평화’와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의 폭력 또한 없는 상태인 ‘적극적 평화’를 구분하고 적극적 평화를 달성할 것을 주창했다. 서보혁 연구위원은 “갈퉁은 물리적 폭력의 부재만을 뜻하는 소극적 평화는 불안정하고 지속하기 어렵다고 봤다”라며 “그는 소극적 평화에서 나아가 상대와 공영하는 적극적 평화의 달성을 주장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갈퉁은 이런 적극적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평화 구축’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서보혁 연구위원은 “평화 구축이란 분쟁의 단순한 종식을 넘어 분쟁이 일어난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해 정치·사회·경제·외교 분야에서 대중의 평화롭고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갈퉁에게 평화는 정치 측면에 한정된 것이 아닌 인간 삶의 전반에서의 평화인 것이다.
<활자 위 평화를 넘어 현실 속 평화를 모색하다>
갈퉁은 이론가를 넘어,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평화 운동가로도 활동했다. 이찬수 연구원은 “갈퉁에게 폭력과 평화는 단순한 이론적 개념이 아니라 삶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 분쟁지역을 발로 뛰던 갈퉁은 1993년 평화 운동가들의 국제적 상호 협력 네트워크인 ‘트랜센드’(Transcend)를 설립했다. 이재봉 명예교수는 “트랜센드의 대표적 성과는 에콰도르와 페루 사이 150년간 지속됐던 국경 분쟁을 중재해 종식에 이르도록 도운 것이다”라며 “비무장 평화지대인 국립공원을 조성하자는 갈퉁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갈퉁은 모든 폭력의 부재라는 이상을 지향점으로 삼되, ‘갈등 전환’이라는 실질적 전략을 수립했다. 이동기 교수는 “갈등 전환은 단순히 갈등 당사자 간의 이익 조정이나 단절을 통한 일시적 평정 상태 유지를 넘어선 실천 지평으로, 갈등 당사자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대방과 비슷한 정도로 이익을 포기하는 식의 타협을 통해 갈등을 단순히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새로운 관계로 재결합함으로써 갈등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갈퉁은 한반도가 동아시아 지역 통합이라는 갈등 전환 전략을 통해 평화 구축에 이를 것을 제시했다. 이재봉 명예교수는 “갈퉁은 한반도 내 갈등 전환의 전략으로 남한·북한·중국·일본·베트남 5개 국가가 유교 문화라는 공통의 문화를 가졌다는 점에 주목해, 이 국가들이 공동 시장을 이뤄 교류 협력을 증진할 것을 제안했다”라고 말했다. 즉, 남한과 북한이 경제적 협력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위해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는 갈등 전환을 꾀한 것이다. 나아가 갈퉁은 남북한이 국가연합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맺어 협력의 긴 과정을 거치는 방식으로 갈등 전환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동기 교수는 “장기적인 평화연맹인 국가연합 방식의 화해 모델은 갈퉁이 한반도 주민에게 남긴 유언으로 간주해도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북한은 통일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하고, 국방부는 강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는 현 상황에서 갈퉁의 제안은 현실과는 괴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폭력이 없는 진정한 평화를 그리면서 이를 실현할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한 갈퉁의 사상은 평화를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여기는 현대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부디 이 종소리가 한반도와 세계 곳곳에 모두 도달하기를 바란다. 글/이재봉 명예교수(원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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