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에 문화재 ‘의정부2동 성당'
담쟁이가 붉게 물든 성당외벽이 가을의 정취를 더해 준다
도심 속에 문화재 ‘의정부2동 성당’
의정부역에서 의정부시청 방향으로 올라가면 4거리 건너 낙원웨딩 홀이 있다. 이 건물을 끼고 골목으로 200m 더 걸으면 고즈녁한 교회 건물(사진)이 나온다. 이 교회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9호인 ‘의정부2동성당’이다.
많은 사람들은 도심과 주택가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의정부2동 성당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이 성당이 경기문화재라는 것을 아는 이는 더 더욱 적다. 이에 본보는 북경기지역에 산재해 있는 생활의 삶 속에 숨어 있는 문화재를 소개하기로 하고 첫 번째 문화재로 의정부2동 성당을 소개하고자 한다.
도심 속에 문화재 ‘의정부2동 성당'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9호인 '의정부2동 성당'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교회>
‘하자 없으신’ 성당으로 불리 우기도 하는 의정부2동 성당(議政府2洞 聖堂)은 구한말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와 양주시 남면 신암리 일대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집단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도자기를 굽던 교우촌이 있었다. 이들은 1927년 개성본당의 연천군 남면 신암리(현재는 양주시)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1934년에는 덕정리 본당(양주군 회천면 덕정리)이 완공되었는데, 이것이 의정부성당의 전신이다.
<덕정리에서 의정부리로 옮겨>
덕정리에 있던 성당은 1945년 양주군 의정부리로 성당 소재지를 옮겼다. 당시 대지 1,625평을 매입하는 한편, 25평 정도의 한옥 1동을 매입, 수리하여 임시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한국전쟁 후 1953년 이계광(요한) 신부가 현재의 성당을 건립했다. 성당 건립 때에 이계광 신부는 당시 의정부에 주둔하고 있던 주한 미1군단의 군종 신부인 로제스키 신부의 협조를 받아 미1군단 카톨릭 신자의 헌금을 성당 건립비로 지원받았다.
<덕정리에서 채석한 돌로 만들어>
본 성당은 석조로 구축되었다. 당시 성당 조적조 외벽의 경우 대부분 적벽돌이 사용되었으나,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화강석을 사용한 예가 많다. 의정부2동성당의 경우 공사비 견적 결과 적벽돌보다 석재가 더 저렴해 석재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 성당은 회천면 덕정리 돌산에서 채석하여 의정부지역에서 활동하던 석공들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그 무렵에 지어진 양주군청사(의정부1동 소재, 현 부대찌개 골목 옆)와 석재의 크기나 다듬기 등 동일한 방법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50년대를 전후한 시기의 성당건축은 내부의 열주가 사라지고 수직 수평의 분절이 약화되어 일제시대보다 훨씬 단순하고 일률적인 경향을 갖지만 외관 특히 종탑과 정면의 양식적 형태와 상세는 고수된다. 이러한 유형을 양식(樣式) 변형 양옥(洋屋)성당이라고 하며, 특히 전쟁을 거치면서 교회에 대한 천주의 보호, 즉 견고함이 새삼 강조되어 석재를 사용하여 성채와 같이 표현되기도 하였다. 의정부2동성당은 이러한 시대적 특징을 갖추고 있는 사례로 평가 되고 있다.
도심 속에 문화재 ‘의정부2동 성당'
단풍나무 아래 휴식 테이블, 옆에는 성당 신자들이 운영하는 엔젤카페가 있다.
운영시간/ 오전10시~오후3시 운영, 커피는 1000원이다.
<가을 커피와 석조 성당>
늘 열려 있는 성당 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성모마리아상이 정면에는 은색석조 위에 담쟁이 넝쿨이 성당을 색칠하고, 왼쪽에는 교회부속실이 은은한 조화를 이루며 도심 속에 가을 정취는 느끼게 한다. 특히 입구에 우뚝 선 단풍나무는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게하고 나무 아래 ‘엔젤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커피 향기는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늘 바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도심 속에 문화재를 느끼는 여유와 커피 한잔을 권하고 싶다. 글씨/ “도심 속에 문화재를 느끼는 여유와 커피 한잔을 권하고 싶다”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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