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훈 作 ‘부산상회(釜山商會)2’
북경기신문 창간11주년 ‘방영훈 미공개소설’ 연재
방영훈 作 ‘부산상회(釜山商會)2’
‘공연이 끝날 때를 기다려 소매를 끌면 마실은 또 웃음으로 사내를 받았다. 술이 들어가면 여자의 웃음소리가 시장 안을 채웠고 간드러진 웃음에 흥까지 돋는다’
(지난호 계속)약간 대머리가 진 그는 나이에 비해 늙어보였고 배가 앞으로 나온 배불뚝이였다. 마실이 거침없이 한잔을 비워내곤 다시 잔을 내밀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어리었다. 두 번째 잔도 말끔히 비운 그녀가 남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참 착하게 생기셨네요” 목소리는 낮았지만 옥을 굴리듯 찰랑찰랑 거린다. 남자는 그제 서야 얼굴을 펴며 “아까 노오래 잘 들었어요” 하고 어눌하게 말했다. 남자는 그제 서야 얼굴을 펴며 “아까 노오래 잘 들었어요” 하고 어눌하게 말했다.
냉화유. 그는 중국사람이었다. 나이 오십 줄인 그는 1930년대 때인 젊은 시절 일본인들에게 끌려와 부산서 노역을 하곤 그대로 눌러앉았다. 피붙이라곤 없이 혼자였고 도떼기시장 적선가옥 한 귀퉁이를 얻어 그곳을 숙소 겸 점방으로 쓰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사람들로부터 금이나 은 따위를 사서 되파는 일이었는데 점방입구 나무판에 써서 붙인 ‘금, 은 사고 팝니다’란 명패가 가게 상호인 셈이었다.
그때 맞은 편 자리가 비자 난전상인 듯한 사내 두 사람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술을 시키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말했다. “형씨, 소식 들었시유? 시장 건물 짓는다는 거” “그리여, 들었시유.” 말씨로 보아 충청도 사람들인 듯 했다. “그런데 말이유, 워째 이 많은 사람들 다 나눠준디야?”“글쎄 말이어라, 지금 그것 땜세 난리가 아니여. 전부 난장깔고 장사하는 사람들인디 어째 구획을 정하냔 말여” “매달 자릿세를 받는다고 들었시유. 그게 얼마나 될랑가 모르겠네유”“그게 문제가 아녀어. 사람은 많고 들어갈 공간은 좁은디 워째 할 거냔 말이여 내 말은” “벌써 시장 이름도 나왔다는구만요. 자유시장이라고. 시청에는 청사진도 다 만들었다 들었시유. 목재로 짓고 몽땅 12동을 짓는다누먼요” “그리하믄 한 동에 스무 가게를 줘도 200여개 남짓 할터인디 나머지 사람들은 다 우찌 한 대유?” “우선 그 거시기 있잖이여. 징용갔다 온 사람들 말이여. 그 사람들부터 준다네유.” “징용이라 하니 내 참고 있던 말 한마디 하갔시유. 징용은 끌려간 사람도 있지만 자진해서 간 사람이 더 많아유. 우리 고향서도 징집할 때 왜놈들이 월 얼마씩 준다고 했잖아유.
그때 농사짓기 싫은 사람들 미래를 본다고 얼마나 자원했는데유” “어쨌거나 지금 이 시장 통에 전쟁 갔다 온 사람들이 득시걸하잖이여. 해방되고 바로 온 사람도 많지만 얼마 전 중국에 가있던 사람들도 왕창 들어왔다네유. 그 중에서도요 부산 인근사람들한테는 다 자리를 줄 모양이던데유”
해방 후 도떼기시장은 길바닥에 깔고 앉아 장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용변이 문제가 됐다. 처음 얼마동안은 보수시장 화장실을 이용했으나 대소변이 넘치자 시장 내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세면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자리를 빼앗길까 노숙을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합판과 나무를 대고 천과 비닐 등으로 점방을 만들어 나갔다. 그 자리에 앉아 밥을 지어먹자니 자연 식수가 필요했다. 겨울이면 화재 위험이 있었고 여름에는 오물냄새가 진동했다. 평소 자리다툼이 빈번하게 일었고 무엇보다 도둑들이 횡행했다. 잠시만 가게를 비워도 물건이 도난당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여기에 세금문제가 또 대두되자 시(市)가 더는 미루지 못하고 건물을 짓기로 결정한 것이다. 1층 목재건물 12동을 지어 이곳에 터를 삼은 사람들에게 가게를 정해주고 일정금액의 세를 받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은 것이 문제였다. 상인조합을 만들려 해도 정상적인 상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번영회 또한 건물이 들어서고 난 이후에나 생각해 볼 문제였다. 그러는 가운데 난전상들 사이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시청이 시장 건물 짓는 일에서부터 점포 세주는 모든 일을 깡패들에게 하도급을 주었다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이 참말이어라?” “글쎄유, 나도 들은 얘긴디 거 뭐시기 무슨 다방에 모이는 패거리들한테 이 일을 맡긴다는거여. 그 패거리들 뒤를 봐주는 사람이 지금 부산 주둔하는 미군 최고 사령관하고 무지 친하다는거여.” 그때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실이 민요 한 가락을 뽑으며 젓가락 장단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모녀를 쳐다보는 가운데 마실은 냉화유의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노래 한 자락을 늘어놓는데 얼굴 가득 요염하면서 소리에는 교태가 배여 있었다. 그런 마실 옆에서 냉화유는 취한 듯 부끄러운 듯 넋을 잃고 말았다.
■마녀사냥■
다음날 저녁에는 포목상점 주인 김대출씨가 마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 다음날은 그릇장수 마종태씨다. 사람들 사이 마실과 자리를 하면 몸도 준다는 말이 돌았다. 사내들이 그녀를 후리기 시작했다. 공연이 끝날 때를 기다려 소매를 끌면 마실은 또 웃음으로 사내를 받았다. 술이 들어가면 여자의 웃음소리가 시장 안을 채웠고 간드러진 웃음에 흥까지 돋아 그곳이 다시 공연장이 되는 셈이었다.
그런 어느 날, 마침내 난전상들이 우려하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모든 노점상은 7월말까지 자진 철거하라’는 방이 곳곳에 나붙은 것이었다. ‘기한을 넘기면 강제철거한다’는 으름장은 두 번째 격문에 나붙었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마가 끼었다’라는 말이 돌았다. 점괘를 짚고 살아가는 할매무당한테서 ‘지랄치는 여자 때문에 도떼기시장이 큰 화를 입을 거’라는 얘기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소문은 삽식간에 퍼졌다. 사람들은 마실을 지목했다. 그녀와 몸을 섞었다고 알려진 사람들의 가게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문까지 가세했다. 어떤 이는 그녀와 잔 남자들이 한결같이 아랫도리에 큰 병이 옮았다는 얘기까지 흘렸다.
올 여름은 유독 무더웠다. 초여름인데도 비 한 방울 뿌리지 않은 날씨에 태양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이글거렸다. 양산이 없이는 돌아다니기도 힘든 날이 계속되었다. 그런데도 저녁나절이면 어김없이 마실의 노래소리가 시장안을 울렸다. 그러나 마실을 두고 이상한 소문이 돈 이후 시장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녀 때문에 사람들이 더 몰려 장사가 잘 된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상인들이었다. 사람들이 슬슬 흩어졌고 상인들 사이 ‘또 염병을 치네’하고 귀를 막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 어느 날 아침이었다.
적선가옥 한 귀퉁이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중국인 냉화유가 자신의 가게에서 등짝에 칼이 꽂힌 채 발견된 것이다. 이웃집 아낙이 지나다 가게 문이 열려 있어 이를 수상히 여기고 들어가 본 결과 입으로는 피를 토한 채 쓰러진 그를 발견한 것이다. 지서에서 경찰관이 달려왔다. 누군가 그를 죽이고 금은붙이들을 몽땅 쓸어갔다는 것이 확인됐다. 아침 내내 시장 안이 시끌벅쩍했다. 그러는 사이 마실이 금붙이를 노리고 남자를 시켜 그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일기 시작했다.
필경 자신과 잔 남정네 중 누군가를 시켰을 것이며 그 자신은 망을 보았을 것이라는 말이 오후가 되자 사실인 것처럼 퍼져나갔다...글/ 방영훈(부산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기자로 24년 재직했다. 현재는 동두천영상단지 추진위원장과 본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부산상회1은 북경기신문(www.bkknews.kr)인터넷 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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