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출신인 것을 자랑스럽게 외치고 다니는 사람 '김정호 목사'
백악관에서 오바마 미국대통령과의 만남(왼쪽부터) 김정호 목사, 부인, 딸, 오바마대통령
특집/ 사람이 희망인 세상(해외인사 첫초대)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고,
의정부출신인 것을 자랑스럽게 외치고 다니는 사람 '김정호 목사'
북경기신문 창간9주년 기념특집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북경기 지역출신을 발굴 소개하는 ‘사람이 희망인 세상’ 해외편을 신설하고, 첫 번째 초대 손님으로 미국 아틀란타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활동하는 김정호 목사를 초대했다.
김정호 목사는 연합감리교회 소속으로 미국교회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100대 교회에 선정되었고, 현재는 아틀란타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활동중 이다. 특히 김 목사는 50(개척교회 50개), 500(선교지원 500곳), 5000(새신자 5,000명 전도)의 선교적 비전을 갖고, 나눔과 섬김의 실천으로 교회다운 교회, 성도다운 성도를 세워, 기독교계의 건강한 부흥모텔목회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청년시절부터 민주운동, 인권운동, 평화, 통일 등 사회 변혁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기도하는 목회자이다.
-우선 목사님의 의정부와의 인연과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을 회고해 주신다면?
"서울에서 태어나 5살때 의정부로 이사 했습니다. 지금도 의정부 내 어린 시절은 꿈과 같은 기억입니다. 논두렁에서 개구리 뒷다리구어 먹고, 추수가 끝난 다음에는 메뚜기 잡던 기억들로 시작하여, 중학생때 부터는 제가 다니던 의정부중학교와 여자 중, 고등학교 가는 길이 같아서 여자아이들과 함께 가는 등굣길이 항상 가슴 두근거리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의정부중앙감리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가 나를 키워 줬습니다. 지금도 옛날교회의 어른들, 선배들, 친구들의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듯해옵니다. 의정부에서는 중앙초등학교, 의정부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는 서울중동고등학교로 갔는데 고1때 담임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다가 어디에서 왔느냐고 질문하기에 의정부에서 왔다고 큰소리로 답했더니 그때 선생님이 ‘의정부에서 온 놈이 뭐 그리 큰소리로 말하냐?’고 무시하는 발언에, 주말이면 서울통학생들을 모아 서울에서 의정부 들어오는 입구를 일요일마다 새벽 청소 했지요, 이유는 동네가 깨끗하면 서울아이들이 우리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고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이민생활과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신 계기를 설명해 주신다면?
“1973년도 고등학교 2학년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민 와서 처음 6개월 동안, 매일 방문을 잠가 걸고 고향생각하며 울었더니 어느 날 아버지가 ‘이제그만해라.’하시더군요. 구 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교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있을 때인데 목회를 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주 작은 교회 목회를 하셨기에 항상 나는 아버지교회가 창피하고 그런 목회를 하는 아버지가 불만스러웠는데 돌아가신 다음,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의 일기를 보니 월급도 못 받는 작은 교회 목회가 그렇게 행복하셨다는 것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일이 계기가 되어 대학을 마치고 바로 보스톤대학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아주어린나이 23살에 목사안수를 받고 미국에서 35년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틀란타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시무 중이신데 아틀랜타 한인교회의 성장사를 소개해 주신다면?
“제가 섬기는 아틀란타 한인교회는 1971년도에 개척된 이 지역 최초의 한인교회입니다. 그런데 내가 1997년도 파송받기까지 9명의 목회자가 바뀌면서 침체되어있었습니다. 당시 100여명 모이던 교회인데, 1996년도 애틀란타올림픽이후 한인들이 급증했고, 교회도 크게성장하여 현재 성도가 2,000명을 넘어섰습니다. 미국한인교회로서는 상당히 큰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진보적복음주의 목회’를 추구 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영혼구원은 물론이고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지역사회와 해외선교에도 참여하지만 2013년도에는 한국과 미국 에큐메니칼 진영의 교회지도자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 컨퍼런스’를 열었고, 2014년도에는 와싱톤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행진’을 하는데 우리교회가 중심 역활을 했습니다. 당시 와싱톤 시내 대로를 걸으며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연로하신 분들과 함께 걸으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를 때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과 한국교회대표들이 백악관과 국무성에 들어가 미국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을 세우도록 촉구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회정의와 평화통일선교를 교회지도자들이 동참해 줄 수 있는 교회이면서도 계속 부흥성장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정부출신인 것을 자랑스럽게 외치고 다니는 사람 '김정호 목사'
인터뷰하는 김정호 목사
-목사님이 지은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교회’라는 책을 보면 미국에 교회를 세운 것은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 삶의 터전 위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열리고 나눔과 섬김으로 연결된 성서적 신앙 공동체를 세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배출하는데 있다고 하셨는데 좀 더 자세한 설명해 주신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열리는 교회라는 것은 차별 없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저는 의정부에 살면서 가장 싫었던 것이 혼혈아 차별이었습니다. 미국에 이민 와서도 내가 소수민족으로 차별 당하는 것에 분노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만큼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환영받고 존중받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결된 교회라는 것은 이기적인 교회가 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역사회발전에도 앞장서고 다른 교회들이 잘되도록 협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미국교회 살리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목회자들을 많이 훈련시켜 개척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교회가 아니라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이기 때문에 미국 속에서 자랑스럽게 살아갈 한인공동체의 꿈을 이루는 일에 쓰임 받고자합니다. 지역사회에서도 경찰관들과 소방대원자녀 장학금사업, 학대당하는 여성보호프로그램지원, 불법체류자 권익보호, 저소득층어린이 급식돕기, 난민정착사업지원 등 이 땅의 고난당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선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저서 ‘송충이가 나비되는 신앙 이야기’ 서평을 보면 인생의 역전 드라마를 기대하는 모든 크리스천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로 이 책은 오늘 우리 앞에 가로놓인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걷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성기로 들려준다고 되어 있는데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내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나 스스로를 송충이 같이 생각했던 시절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사랑으로 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이고 거룩한 자화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대학생 청년목회를 보스톤과 시카고에서 17년 동안 했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인데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 때문에 자기를 잃어버린 젊은이들이 예수님사랑으로 회복되는 목회를 했습니다. 목회가 정말 재미있고 보람 있는 것은 사람이 바뀌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의 감옥과 무덤이 열리는 역사를 경험합니다.”
-목사님은 평화와 북한에 대한 관심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도 몇 번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와 이 시대에 한반도 평화와 남북교류시대를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남한 사람들이 갖춰야 할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아버지가 이산가족입니다. 아버지 생전 소원이 할아버지 산소 찾는 것 이었습니다. 제가 찾았습니다.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원수지간인 것 같았던 야곱과 에서가 눈물로 만난 것을 봅니다. 우리는 원수가 아니라 다시 만나야 할 형제입니다.
현재 남한과 북한경제는 100대 1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북을 살려야합니다. 우선 전쟁의 위협을 줄이고 평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개성공단 같은 프로젝트가 많이 생겨야합니다. 부산에서 평양, 신의주를 연결하는 기차길이 열려야 합니다. 더 이상 북한의 천연자원들이 중국에게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북한을 살리면서 남한이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분단의 현실 때문에 섬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젊은이들이 기차를 타고 북한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 유럽까지 여름이면 배낭여행을 다닐 수 있어야합니다. 서로 죽이는 길을 택하지 말고 함께 사는 길을 택해야합니다. 나는 통일조국의 수도가 의정부가 되는 날을 소망합니다.
-현재 남한사회에서는 탈북자들의 삶이 매우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보는 탈북자들의 시각은 어떠신지, 체재와 이념이 다른 곳에서 교육을 받았던 탈북청소년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훌륭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요
“우리교회도 미국에 난민으로 온 탈북자를 돌보고 있습니다. 한국탈북자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탈북청소년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인내로 돌봐주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독일이 통일되고도 오랜 진통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처럼 오래참고 오래 기다려주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를 교회가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반도의 장점은 출발과 도착입니다.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를 풀지 못해 우리는 섬나라가 되었습니다. 섬 생활의 가장 북쪽 도시 중 하나가 의정부입니다. 이곳은 남북의 가장 큰 화력이 집중화 되어 있어 늘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의정부시민들은 경의선, 동해선 연결에 이어 경원선(의정부~원산) 연결이 한반도 기능을 회복하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통해 유럽과의 육상연결을 고대하는 ‘대륙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경원선 주변지역 주민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 질문만 들어도 가슴이 뜁니다. 내가 어린 시절 의정부는 서울방어선이었습니다. 서울을 지키기 위해 의정부는 존재하는 것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의정부 사람들은 누구보다 소외 된, 변두리 인간들의 아픔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제 기억으로도 의정부에 실향민들도 많았던 것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민족의 아픔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이제 그 아픔의 역사를 밑천삼아 ‘대륙의 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참으로 멋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경원선주변 지역주민들은 지금부터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평화학교를 만들어 민족의 화해와 갈등해소를 위한 교육을 스스로 자청하고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미 평화통일을 이룬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꿈을 가지는 겁니다.
-의정부 고향 방문 계획은 있으신지, 그리고 따님이 백악관에서 근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따님을 포함하여 목사님의 가족 관계에 대해 소개를 바랍니다.
“한국을 매년 방문합니다. 이제는 가능하면 매년 의정부를 방문해서 옛 친구들도 만나고, 고향교회도 방문하고 싶습니다. 큰딸아이가 오바마대통령 첫 선거운동 시절부터 함께했고 백악관에서도 근무했습니다. 지금은 언론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둘째딸은 시카고 프로축구팀 Fire에서 코뮤니케이션 메니저로 일하고 있고, 아들아이는 미평화봉사단을 다녀온 후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모두 결혼을 안했습니다. 나이는 31살, 28살, 26살입니다. 착한 의정부총각들이나 처녀소개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하하) 아내는 연방노동청에서 회사들이 나이차별, 여성차별과 인종차별을 못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북경기지역 시민에게 마지막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제가 의정부출신인 것을 자랑스럽게 외치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일찍 고향을 떠난 사람을 기억해주는 것 너무 감사합니다. 의정부 자랑하는 일에 열심을 더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취재/ 현성주 기자
<김정호 목사 학력 및 경력>
중앙초등학교 48회(1969년)
의정부중학교 22회(1972년)
중동고등학교 재학중 이민(1973년)
일리노이공과대학(1979년)
보스턴 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M.Div, 1982년)
시카고 신학대학원 신학석사(ThM, 1987년)
시카고한마음연합감리교회 시무(1983~1997년)
아틀란타한인교회 시무(1997년~현재)
<저서>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교회(신앙과 지성사)
송충이가 나비가 되는 이야기(신양과 지성사)
영문저서, 영문공동집필서 외 다수
의정부출신인 것을 자랑스럽게 외치고 다니는 사람 '김정호 목사'
인터뷰 후 김정호 목사 집무실에서 현성주 편집국장(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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