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교수의 맛있는 사람의 멋있는 이야기 이태리 단상(2)
이현숙 교수의 맛있는 사람의 멋있는 이야기 이태리 단상(2)
시아버지의 임종과 억척 엄마의 이태리 생활
1991년 7월 31일 이 날짜를 잊지 않는다. 이태리로 출발한 날. 그전 날에 시아버님이 밤늦도록 이태리 입고 갈 티셔츠를 그리시고 또 다리셨다. 남대문을 직접 그리시고 며느리를 위해 선물을 해주시기 위해서. 늘 자상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열린 마음으로 대하시는 분. 특히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는 분.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월급을 다 털어서라도 도와주시는 분이셨다.
시어머니는 이점을 힘들어 하시면서도 은근히 아버님을 자랑하신다. 아버님처럼만 세상을 살면 되는 거라고. 나는 이태리에서 그 옷을 입고 만나는 사람마다 남대문을 자랑했다. 우리나라 보물임을. 아직도 그 티셔츠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버님이 정성을 다해 만드신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 이후엔 아버님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성을 다해 그리시고 또 주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그날 아침 떠나기 전에 같이 찍은 사진에 울고 계신 것을 나중에서야 보게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생활한다는 기대감과 희망에 활짝 웃고 있었고. 그 후 2년 후에 돌아가셨다.
자리 잡기도 힘들고 여비도 만만치 않은데 걱정할까 봐서 그런지 어머니께서 아프신 아버님 소식을 전해 주질 않으셨다. 임종이 가까워 올 때 시동생이 형에게 편지를 띄웠다. 그리고 남편만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성가 독창곡을 녹음했는데 아버님께서는 아프실 때 계속 그 성가들을 들으셨다고 했다. 그것이 아버님께 드린 나의 마지막 선물이 된 것 같다. 부모님께서 많이 사랑해주셔도 늘 옆에 있어드리지 못하는 자식은 나중에 그 고마움을 마음속 깊이 느낀다.
그리고 어떤 방법이든 사랑은 깨닫게 되는 것. 그리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 그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소원해도 현실이 되지 않는 것. 그건 때가 차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질서라는 생각을 요즘 해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만남은 이루어지고 또 그 만남이 우리의 뜻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잘 섬기는 것. 그것이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걸 보여주셨고 또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이태리에 도착한 다음 날. 성당의 종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우리나라에선 들어보기 힘든 것이어서 정말 이국에 있구나. 그렇게 오고 싶어서 10년을 기도하던 땅. 이탈리아. 지금 생각해도 나의 제2의 고향 그리고 15년이란 세월. 인생이 가장 꽃 같은 나이에 보낸 곳. 아침에 일어나 집 앞의 공원을 산책했다. 한국과 비교하니 풍요로웠다. 그렇게 큰 공원과 도서관이 바로 집 앞에 있다는 것이 좋았다. 다음 날부터 아이들과 도서관의 어린이 동화책 방에 갔다. 그림을 보며 단어를 찾지 않고 무턱대고 읽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동화책을 보듯 그렇게 시작했다.
어학에 있어서는 다시 아이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30년을 배운 한국어를 뒤로하고 나는 이사람 들과 맞서려면 그들이 읽는 모든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사전을 가지고 다니며 전철이고 관공서고 모든 곳에 있는 단어를 다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려니 정말 시간을 쪼개서 유용하게 써야만 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니 가정도 꾸려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그래도 젊기 때문에 그 모든 걸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도 남편은 나를 두고 양궁 극빈국에 재능 기부를 하고 살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아주 유용하게 쓰는 것은 이때 훈련된 습관이리라.(계속)
글/ 이현숙. 이 교수는 이화여대, 이태리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 베르첼리 비오티 아카데미아를 졸업하고, 국립합창단 단원, 국립오페라단, 김자경 오페라단 등에서 다수 오페라 주역을 맡았다. 현재는 의정부 예술의 전당 이사, 신흥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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