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장사익, 라경화!
여자 장사익, 라경화!
지난 11월 2일, 서울시청 신관공연장에서 국악가수 라경화씨를 처음 만났다. 그는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고 무대 위에 올라 가야금 앞에 섰다. 300여명의 관중들이 숨을 죽이고 가수 라경화를 바라봤다. 첫 번째 노래는 가야금 반주에 맞춰 ‘칠갑산’을 불렀다. 민요인지 가요인지 장르가 구분되지 않지만 감칠 맛 나는 음률은 새로운 장르임이 분명했다. 두 번째 노래는 ‘배 띄워라’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폭발력과 작은 체구에서 터져 나오는 파워풀한 힘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고, 그녀는 우뇌와 같은 박수와 함께 앙코르 사례를 받았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는 눈 한번 뗄 수 없었고, 관객들은 국악가수 라경화에게 빠져 들어가는 것이 역역했다. 마지막 앙코르 곡으로 ‘동백아가씨’를 불렀다. 순간 긴장했던 몸이 풀어지면서 관객들은 박수로 박자를 맞춰 함께 따라 불렀고, 짧았지만 꿈을 꾼 듯, 소리꾼 장사익 선생을 만난 듯 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 후 두 번째 만남은 지난 12월 26일, 의정부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북경기신문주최 ‘의정부를 빛낸 50인 선정식’에 축가를 부를 가수로 초대했다. 그 날 국악가수 라경화씨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축가는 축가이상으로 수상식장을 온통 축제의 분위기로 바꾸는 신통력(?)을 발휘했고, 관객은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그는 소리꾼 장사익 선생 같으면서도 또 다른 색깔을 내는 특징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그를 ‘여자 장사익 라경화’라고 부르기로 했다. 더욱이 새로운 것은 의정부공연에서 공개적으로 그가 의정부 시민으로 녹양동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숨은 진주를 발견 한 듯 녹양동사무소 건너에 위치한 중국집 만리장성으로 라 선생을 찾았다.
-의정부는 어떤 인연으로 오게 됐나?
“아이들 교육문제로 1998년 의정부로 이사 오게 되었는데 녹양동은 과학고등학교를 비롯해 화교학교, 외국인학교가 있는 북경기지역 교육1번지라 오게 됐습니다”
-국악하고 인연은?
“저희 어머니가 국악을 좋아해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가야금을 권유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국악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중앙대학교 한국학과에서 가야금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전공 후 활동은?
“국악 전공자 중에 노래와 연주가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어 각종 문화 행사시 연주자로 국악가수로 활동해 왔습니다. 제가 발표한 곡은 ‘겨울비’ ‘고봉산 연가’ 등이 있는데, 순수음악으로 전공자 그룹이나 마니아 그룹들이 찾는 음악으로 대중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 봉사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내 내면의 있는 달란트를 발견했고, 새로운 장르의 노래를 통해, 서로 위로하고, 서로 용기와 희망을 만들어 내는 일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동기 나 주로 활동하는 곳은?
“동기 중 교단에서 사회교육시설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주인공 오정해씨가 국악고, 중앙대 동기로 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민들레영토 지승룡 대표를 도와 각종 모임에 음악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누가 불러도 기쁜 마음으로 달려갑니다. 노숙인을 위한 예배도, 길거리 공연도 의미와 뜻이 있다면 나를 통해 희망을 만들고 아픔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국민모두가 찾는 국악가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젊은이들은 국악이 진부하게 느끼는데 이는 전통에 얽매어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지 못해 생긴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악가요는 민족음악을 근간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음악형태로 부족하지만 이 길을 개척하고 이 길을 걷고자 합니다”
-가족 관계은?
“남편과 1남 1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저를 따라 국악을 공부하다 피리를 전공하게 됐고, 딸은 해금 전공, 올케는 피아노 전공으로 우리는 행복한 음악가족입니다”
여자 장사익, 라경화!
국악가수 라경화씨/ 국악예술고, 중앙대 한국학과(가야금전공)졸업하고 KBS목포가요제 대상 수상으로 가요계 데뷔, 독집앨범 1,2,3집 출판했으며, 현재는 국악가수로 중앙대학교실용음악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취재/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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